▲물에 비친 위안퉁쓰의 아름다움
양학용
위안퉁쓰는 아름다운 절이었다. 입구에서부터 돌길을 따라 내려가자 연못이 나왔는데 그 연못 한가운데 팔각정 모양의 사원이 있었고, 그 너머에 본당이 있었다. 연못에는 물새 두 마리가 미끄러지듯 떠다니며 수면에 잔잔한 비단결을 빚어냈다. 그 비단결의 울렁임에 따라 연못에 담긴 사원이 살랑살랑 꿈을 꾸듯 춤을 추었다. 실제 사원도 아름다웠지만 그렇게 물에 비친 사원의 그림자가 더 아름다웠다.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렇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쓴 글이 나보다 더 아름답다고 느낄 때가 있다. 글은 지나간 시간을 압축하고 정제하여 태어나지만 내 삶은 언제나 울퉁불퉁 현재진행형으로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추억도 그렇다. 아름다운 추억은 시간의 그림자가 길어질수록 더 크고 아름다워진다. 몇 년 전에 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울산의 달동네 집을 어머니를 모시고 찾아가 본 적이 있다. 달동네 끝집이었던 우리 집까지는 두 개의 골목길이 갈라졌다 만나곤 했는데, 위쪽 길은 넓고 긴 반면 아래쪽 길은 좁고 짧아서 밤이 되면 지나기가 무서웠다.
누이와 함께 눈을 질근 감고 좁고 빠른 길을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뛰어가던 기억은 어른이 되고서도 오랫동안 내 꿈으로 나타나곤 했다. 또한, 길은 아름다웠다. 그 길에서 구슬치기와 딱지치기를 했고, 아랫마을 아이들과 나무 작대기로 칼싸움했으며, 밤이 되면 동네 누이들과 함께 숨바꼭질했다. 다행인 것은 숱한 도시재개발에도 불구하고 그 길이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기억 속의 길이 아니었다. 아주 넓었던 윗길은 전혀 넓지 않았고, 무섭고 길었던 아랫길도 전혀 길지가 않았다. 구슬치기를 하고 숨바꼭질을 하던 동네의 넓은 터도 겨우 네댓 채의 집들 앞에 놓인 작은 골목길일 따름이었다. 결정적으로는 우리 옛집이 있었던 동네는 내 기억과는 달리 달동네가 아니었다. 아주 조금 오르막이 있는 초라한 동네일 뿐이었다. 누군가 집과 길 그리고 동네를 나 몰래 축소하여 놓은 것만 같았다.
더욱 신기한 일은 그날의 방문 이후에 일어났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음에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골목길이 다시 넓어지고 길어지더니, 결국 내 오래된 기억 속의 길로 회귀하는 것이었다. 30년 동안 내 안에 살아온 기억 속의 골목길은 이제 그림자가 아니라 스스로 실제가 되었음을 내게 증명해 보이려는 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