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연기하는 세 명의 배우 어서오세요에서 열연하는 아버지와 술집주인 그리고 술집주인의 아들
제작사
섬뜩할 정도로 냉정한 그의 퍼즐맞추기식 연출로, 극 말미에 이르러 술집주인과 그 우스꽝스러운 아들 콤비에 의해 재구성되는 손님의 정체는 클라이맥스와 임팩트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래 내가 졌다. 이만하면 명불허전이 아닌가? 승부수에 가까운 입체감 넘치는 사운드가 '무지'한 나의 오감을 사로잡는 건 순전히 카리스마 넘치는 극의 높은 완성도 때문이다.
연출에서 내공을 유감 없이 발휘한 한재혁은 작두를 타듯 90분 동안 관객을 마음껏 주무른다. 이런 식의 유린, 즐겁다. 그로 인해 기꺼이 마음 한 구석의 빗장이 무너질 정도의 무장해제를 경험한 후에 찾아오는 삶에 대한 되새김은 단지 테크닉으로 승부할 수 있는 반전이 아니기에 더 흠뻑 젖는다. 그제서야 배우들의 면면이 눈에 더 잘 들어온다.
히든박스라는 연기자 그룹이 히든 컴퍼니 극단으로 정식 창단해 첫 시작을 알리는 공연으로 선정한 <어서오세요>. 이 연극을 그저 돈에 대한 인간의 탐욕과 뛰어난 내면의 심리묘사라는 것만으로 표현하는 것은 부족함을 넘어서는 모독에 가깝다. 꿈의 끝은 어디인지 몰라도 몰락의 끝은 분명한 우리의 삶. 처절한 인생의 바닥으로 내려가 잠자는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경종을 울리는 이 섬뜩함이 아니라면 어찌 '죽음'의 문제를 잠시라도 생각할 것인가?
척박한 현실 속에서 많이 힘들고 지친 자들에게 '처절한 바닥'을 선물하고 싶다는 연출자의 속내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서오세요>가 보여주는 것보다 더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어서오세요>는 그 자체로 문화의 거리인 대학로의 대표연극이라는 찬사를 들을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전부 7명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술집주인 아들을 제외한 손님과 딸, 산림경비원과 술집 주인은 더블 캐스팅으로 다른 호흡과 파장을 선사한다. 한번의 관람으로 막막한 감동을 가눌 길 없다면 재관람은 덤이 아닌 당연한 것이다.
이 연극을 보고 'windin****'이라는 네티즌은 "날카로운 풍자라는 것은 때때로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은 것이다. 단지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이야기이기 때문에"라는 평을 남겼다. '어둠예찬'이라는 네티즌은 "이 연극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비단 마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의 한 물질주의적인, 그리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실상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경로는 달라도 깨달음이 하나인 이유다.
세상은 직선이 아닌 곡선이다. 존재만으로 숨막히는 시지프스의 좌절은 바로 그 곡선에 참뜻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가도 가도 결국은 제자리인 원점으로의 회귀, 문득 뫼비우스가 생각난다. 어서 오세요라는 그 말, 속이 비비 꼬인 자들이 불행의 무대로 유혹하는 그 인사말이 오늘 따라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