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키 크롬로프2008년.
배수경
작은 소극장 안에 연극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하나둘 좌석을 채우기 시작했다. 나는 일부러 앞 자리에서 봤는데 전반적인 빛의 조화나 연극의 총체적인 감상을 위해서는 그닥 좋은 자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대신 배우들의 표정 하나 하나 눈빛 하나 하나를 읽을 수 있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안성 맞춤이었다.
무대 위, 눈에서 혈기가 느껴지는 젊은 남자배우는 멋진 미소를 가졌지만 그의 옆에는 얼굴에서 뿜어나오는 아우라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노(老)배우가 있었다. 살아온 연륜이 난폭하거나 세차지 않고 곱게 내려 앉아 있는, 누구든 포용할 것 같은 얼굴에는 그러나 사물을 꿰뚫어 보고도 남을 만큼의 눈빛이 숨쉬고 있었다.
젊은 배우에게는 좀 더 크고 싶은 욕망과 열정이 함께 공존했다면 나이든 배우에게서는 유명하고 안하고를 떠나 배우로서의 본인을 부드럽게 풀어놓는 여유가 내 눈에도 보일 정도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여주려고만 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을 둘러보며 그 공간을 함께 호흡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