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으로 기소돼 실형을 받은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경기청장 재임 당시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옥쇄파업에 대한 강경 진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조 전 청장은 "쌍용자동차 사태 당시 중립으로 대처했다"며 "초기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건 당시 한상균 쌍용차 노조위원장도 인정할 거다"고 말했다.
유성호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청장 재임 당시 보람 있었던 일로 "전·의경 가혹행위 근절"을 꼽았다. 실제 그는 40여 년 지속돼온 전·의경에 대한 상습적인 가혹행위를 근절시켜 기피대상이었던 전·의경을 선망의 대상으로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군대 내 끊이지 않는 가혹행위에 대해서도 "'인권침해 소지가 있지만 남북이 대치하는 비상 상황에서 군기 유지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어떤 시책을 펴도 근절이 안 된다"며 군 지휘부의 의식 전환을 강조하기도 했다.
경기경찰청장 재임 당시 평택 쌍용자동차 진압 논란에 대해서는 "이런 상황을 빨리 청산시켜서 해고 근로자들을 복직시키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회사가 정상화 됐는데도 사측이 해고근로자를 복직시키지 않은 데 대해 안타깝다"며 "빨리 복직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이창근 정책기획실장과 김정욱 사무국장은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를 무효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에 반발해 지난해 12월 13일부터 평택공장 70m 높이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경찰청장 시절 직을 걸고 '수사권 독립'을 외쳤던 그는 인터뷰에서도 시종 경찰 수사권 독립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국민들을 위해 수사권 조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경우 검찰이 다른 나라와는 달리 행정부 소속으로 사법기관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외국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나가 갈등 해소 방안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전의경 가혹행위 가해자 전원 형사입건...희생없인 불가능했다"- 조 청장 재임 당시 논란이 된 사건이 유난히 많았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촛불집회라는 엄청난 국가적 대사건이 있었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도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극단적으로 갈라졌지 않았나. 그 부담을 길거리에서 경찰이 받아내야 했다. 쌍용차 사건도 그 연장이다. 또 단군 이래 최대 행사라고 칭했던 G20도 열렸다."
- 과거 전·의경에 대한 상습적인 가혹행위와 구타로 자살이 끊이지 않았는데?"경찰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인권보호기관이다. 그런데 1971년 창설이래 40년간 기혹행위가 근절되지 않았다. 일반 국민들이 이런 가혹행위를 할 때는 형사 입건해서 당연 처벌한다. 그러면서 경찰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혹행위를 방치를 시켜두면 그게 말이 안 되지 않나."
- 경찰청장 재임 때 이를 척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경찰에 몸담아 오면서 오랫동안 고민해 오던 문제였다. 경찰청장 때(2011년) 강원지방경찰청 전 경대에서 선임들의 구타와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한 이경 6명이 부대를 집단 이탈했다. 해당 부대 중대장은 이런 사실을 알고도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사건이 터지자마자 위기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307전 경대는 창설 28년 만에 전격 해체됐다. 해당 전경대장을 포함한 부대 지휘요원 5명과 가해자 15명이 전원 형사입건시켰다. 그 사람들 전과자 만들면 내 마음이 편하겠나? 하지만 매년 여러 명이 뛰어내려서 죽거나 탈영하게 만드는 일을 막을 수 있다면 어떤 걸 선택해야 하겠나? 이런 희생도 치르지 않고서 가혹행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했나?"전·의경들이 오죽 견디기 힘들면 목숨까지 끊고 그러겠냐. 그 때 논산훈련소에서 전경 차출당하면 본인은 물론이고 부모형제들이 울고불고 난리를 칠 정도였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점호를 취하더라. 최소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만 점호를 하도록 했다. 하루 10시간, 주당 65시간 근무시간도 45~50시간으로 대폭 줄였다. 남는 시간은 개인발전을 위한 일에 사용하도록 했다. 주 1회 외출, 2개월 마다 정기외박 등 영외활동을 보장했다. 현장지휘요원의 인식변화를 위한 교육도 많이 했다. 밑에서 엄청나게 반대했지만 내가 전부 다 책임진다고 했다.
- 군대 내 성폭력, 가혹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어떤 처방이 필요하다고 보나?"군에 대해서는 내가 말하기는 좀 그렇다. 지금 양극화 현상이 더욱 더 심화되고 있다. 중산층이 10%가 줄어들고 하층은 더 늘어났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내 목숨 바치겠다는 생각이 들겠나. 그래서 다원적으로 접근해야 될 그런 문제인 것 같다.
그렇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의식의 문제다. 비록 인권침해 소지가 있지만 남북 대치하는 비상 상황에서 군기 유지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어떤 시책을 펴도 근절이 안 된다.
전쟁이 발생할 경우 진짜 내 한 몸 기꺼이 바쳐서 내 동료를 위해서 희생을 하는 부대를 만들려고 하면 부대의 공기가 어때야 하겠나, 군인 개개인 입장에서 내 목숨, 내 가족, 내 동료, 내 이웃, 우리 국민을 지켜내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어가야 하는 거다. 군 지휘관들이 군인 개개인이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최대 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지에 대해 공감한다면 하루아침에 근절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재임 당시 '인사 청탁하면 이름을 공개하고 승진에서 배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인사 청탁을 이유로 승진에서 제외시킨 적 있나?"그렇다. 서울경찰청장 시절 실명 다 공개해서 이야기했다. 그렇게 하니까 조현오 있을 때는 청탁하면 죽는다. 이렇게 퍼져서 감히 청탁을 안 했다."
- 청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나?"그런데도 여야 정치인들이 청탁을 하곤 했다. 그러면 청탁하는 건 자유지만 공개 안 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그래서 여당 국회의원들까지도 나를 아주 싫어했다. 심지어 청와대 쪽 인사가 요청을 해와도 안 들어줬다. 지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느냐 경찰청장 평생할 거냐 이런 이야기도 나왔다."
- 경기청장 재임 때 노동자들의 평택 쌍용차 점거농성 진압을 놓고 과잉진압 목소리가 여전하다? "잘못 알려진 거다. 경기경찰청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쌍용차 사측과 협력업체 쪽에서 찾아와 경찰 투입을 요청했다. 하지만 엄정 중립을 지켰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사설을 통해 '노조가 불법행위를 일삼고 있는데 경찰이 아무런 조치를 안 하고 있다'고 썼을 정도였다. 오히려 사측에 '경찰 힘을 빌려 사태를 해결하려는 생각은 아예 버리라'고 말했다. 해고자와 비해고 근로자간 충돌도 있었지만 중립적으로 대했다. 초기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건 당시 노조위원장도 인정 할 거다.
회사는 사실 어려웠다. 생산성이 떨어지고 법정관리상태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급기야 파산위기에 까지 갔다. 회사 측을 대화장에 끌어 내기도 했다. 하지만 대화가 결렬됐다. 그래서 마찰이 커졌다. 내가 작전을 한 것은 파산이 곧 임박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약 10만 명이 거리로 나 앉게 생긴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이 최소한의 질서 유지를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런 상황을 빨리 청산시켜서 해고 근로자들을 빨리 복직시키면 될 것으로 판단한 거다."
"쌍용차 과잉진압? 초기엔 엄정중립 지켰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