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 아이들어딜가나 한 집에 2~3명의 아이들은 기본이었다
정효정
잠시 영매와 이야기를 해봤다. 하얀 얼굴에 청회색 눈, 주근깨가 있어 어리게 봤는데, 알고보니 대학생이었다. 국어교육학과에 다니고 있고, 장래희망은 키르기즈어 선생님이 되는 거란다. 영매에게 어떻게 사람의 과거나 미래를 볼 수 있냐고 물어봤다. 영매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신이 가슴 속에 들어와 이야기를 해줘."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다 다른데, 자신의 재능은 조상신과 대화하는 재능이라고 했다. 조상신에게 기도를 하면 그 신이 자신의 가슴속에 들어와서 메시지를 준단다. 나의 경우에는 아이샤비비라는 여성신이 들어와서 나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네명의 아이를 점지해 줬단다.
아이샤비비는 아주 용맹하고 똑똑한 처녀인데, 어느 날 한 영웅과 사랑에 빠졌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아이샤비비는 그 남자를 만나기 위해 도망가고 말았다. 화가 난 아버지는 자신의 딸에게 저주를 걸어버린다.
길을 떠난 아이샤비비는 6개의 강을 건너고 7번째 강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연인을 위해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모자를 쓰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연인이 뱀으로 변해 그녀를 물어버렸다. 아버지의 저주 때문이었다.
하지만 착한 아이샤비비는 늘 연인들의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카자흐스탄에 있는 아이샤비비의 무덤엔 언제나 사랑이 이뤄지길 바라는 커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자신은 비록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지만, 다른 사람의 사랑이라도 이뤄지길 기도해준다는 거다.
실제로 카자흐스탄 탈라스 평원에 가면 아이샤비비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아이샤비비는 잠불, 탈라스 지역의 여성영웅이다. 원래 부잣집 딸인데 용맹하고 아름다워서 이 지역을 수시로 침범하는 유목민족을 쫓아버리고, 카자흐평원으로 향하는 대상을 보호하고, 부족내의 분쟁에 지혜를 발휘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느 날, 카라한조 왕이 그 소문을 듣고 아이샤비비를 만나고 싶어했다. 아이샤비비는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으로 카라한조 왕을 만나기 위해 떠난다. 하지만 탈라스 계곡을 넘던 그녀는 여행 중 뱀에 물려 죽었다. 그 후 그녀의 죽음을 슬퍼한 카라한조의 왕이 아이샤비비를 위해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지었다고 한다.
키르기스스탄에서 들은 이야기와 차이는 있지만 아버지와 뱀의 등장은 동일하다. 그 외에도 아이샤비비의 전설에는 다양한 버전이 있다. 어쨌든 실제 무덤까지 있는 인물인 아이샤비비의 영혼이 오늘 친히 이곳을 방문해 날 위해 기도를 해줬다고 한다. 조금 감동적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들
▲키르기스스탄 할머니유목민의 후예 키르기스스탄 사람들, 하늘신 텡그리를 섬겨왔다
정효정
나중에 차를 타고 나오는데 굴리아가 웃으면서 말한다.
"알아? 아까 향 꺼졌잖아. 안 믿는 사람이 와서 그렇다는데 아마 나일 거야. 자연에 신이 어딨어? 신은 유일신 알라 뿐이야," 어쩐지 억울했다, '것 봐, 나 아니라니까!'라고 아까 방안의 사람들에게 외쳐주고 싶다. 하긴, 내 마음도 반신반의긴 했다. 죽은 자와 정말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살다보면 그런 순간을 간절히 원하는 날이 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내가 인식하는 세계 너머의 일이다. 아무리 손을 휘둘러도 잡히지 않은 바람 같은 것들이다.
잡히지 않는 바람을 잡으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 '나무나 돌에 신이 어디 있냐'는 굴리아를 보며 나는 그저 애매하게 웃었다. 영매가 무슨 말을 하든 무조건 믿을 수도 없고, 또 무조건 부정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가지고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죽은 자를 위한 집키르기스스탄은 실크로드를 통들어 가장 아름다운공동묘지를 가지고 있다
정효정
돌아오는 길에 동네 가게에 들러 토마토와 생선통조림을 샀다. 갑작스런 외국인의 등장에 키르기스스탄 아가씨 눈엔 웃음과 호기심이 가득하다. 가슴에는 액운을 막아준다는 작은 고추 모양의 장식물이 달려 있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잠시 앉아 밤 하늘을 봤다. 늙은 무당은 아까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하늘을 보는 거라고 했다. 별이 가득하다. 서울에서는 당연히 별을 볼 일이 없었고, 사실 별을 보고 싶다는 마음도 안 들었다. 생각해보니 꽃 핀다고 좋아하고 단풍 진다고 구경갈 때, 별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무한한 세계가 있는데 쳐다볼 생각도 안 했구나 싶다.
수많은 별을 눈으로 더듬어 유일하게 아는 별인 북극성과 베가를 찾아봤다. 북극성은 여행자의 별이다. 이 별만 알아도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다. 동서고금, 길을 잃은 사람들은 북극성을 보고 자신의 길을 찾아냈다. 물론 지금은 스마트폰 GPS로 지금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밤하늘의 별들은 구글 스카이맵으로 확인 가능하다. 하지만 만약 스마트폰이 없으면 우리는 다시 북극성부터 찾을 것이다.
이 땅에 유일신을 섬기는 이슬람교가 13세기부터 전파되기 시작했고, 19세기부터는 러시아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하지만 하늘신 텡그리를 섬기며 넓은 초원을 달리던 유목민의 믿음은 아직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생활이 신앙이고 종교였던 시절, 늘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고 하늘의 이치를 찾던 시절이었다.
자꾸만 가슴 속에서 궁금증이 터져나온다 ' 영매는 정말 신과 대화를 할까', '정말 조상신이 있는 걸까', '영매는 내 미래를 보았을까', '내가 정말 애를 넷이나 낳게 될까', '이 나이에 낳기 시작해서 넷째까지 낳으려면 한 쉰살은 되야 끝나지 않을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꾸만 뻗어가지만, 오늘은 하나만 가슴에 담기로 했다.
세상에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키르기스탄 할아버지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은 낯선 이에게도 호의적이다. 외모는 몽골계다
정효정
키르기스스탄 여행정보 |
- 키르기스스탄의 공정여행, CBT (Community Based Tourism) 이용하기 키르기스스탄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 CBT는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여행협회다. 여행정보부터 투어, 차량, 민박집 알선까지 도와준다. 수익금의 대부분은 지역사회로 돌아간다.
* 홈페이지 주소 : cbtkyrgyzstan.kg * 나린 CBT 제공 투어 : 송쿨 호수 투어 / 타쉬라밧 투어 / 승마체험 투어 등 * 민박집 : 1박 600 som (나린시 기준, 약 11~12달러, 조식포함) * 유르트 숙박 : 1박 500 som (조식포함) 저녁식사 300 som (송쿨호수 기준) * 승마 : 가이드 없이 400 som, 가이드 포함 750 som (송쿨호수 기준) * 차량 : km 단위로 계산 (1 km당 14 som )
ex) 나린- 카자르만 : 7,040 som(왕복 약 500km) 나린 - 타쉬라밧 : 3,375 som (왕복 약 240km) 나린 - 송쿨호수 : 3,850 som (왕복 약 27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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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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