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 잔 따라주세요무대에서 연기하는 이달형
극단 예군·(주)후플러스
올해는 을미(乙未)년이다. 작년은 갑오(甲午)년이었다. 어쩌면 해의 '이름'때문에 갑질에 대한 사회적 공분과 지탄이 횡행했는지 모른다.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유행한 것을 기억하시는지. 그 주연배우들은 지금 CF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공중파가 아닌 케이블 방송의 드라마가 히트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 출연배우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광고모델로 등장해 다시 시청자와 만나는 것은 더 쉽지가 않다.
아니, 어렵다. 여기 그 드라마에 오 과장의 친구 변 부장으로 나와 얄미운 '갑질'로 공분을 샀던 한 인간이 무대에 섰다. 배우이자 가수인 이달형, 내공이 없으면 불가능한 모노드라마에서 그가 드디어 알몸으로 우리를 만난다.
갑자기 도착한 편지 한 통... 과거의 추억으로 끌고 가다당신에게 어느 날 발신인도 주소도 없이 약속장소와 시간만 적힌 편지 한 통이 배달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연극은 이 미스터리한 한 장의 편지에서부터 출발한다. 반백 년을 살아온 남자 혹은 여자라면 정체불명의 편지를 보낸 자에 대해서 아마도 자신의 과거를 더듬어 볼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같이 하지 못하는, 잊지 못할 그 누군가를 기억 속에서 불러낼 확률이 높다.
<술 한 잔 따라 주세요>도 그렇다. 설렘과 긴장으로 그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약속장소에 도착한 달형은 혼자 맥주를 마시며 자신의 지난날을 복기(復記)한다. 그리고 밝혀지는 그의 인생사. 부침보다는 주로 음지에 가까웠던 설움의 시간이 방백의 형식을 빌려 극장 안을 메운다. 그건 사실 민낯의 고백이다.
불우한 가정사로 유년시절을 보낸 후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15년간 노숙하며 무대를 전전했던 사연이 소개된다. 돈이 없어 프로필 사진 한 장 못 냈던 날들, 극단에서 막내로 지내며 겪은 웃지 못할 에피소드까지. "대학로의 벤치, 카페가 나의 집"이었다던, 배우 이전에 한 인간의 촉촉하지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러다보면, 축복받지 못했던 구질구질한 사연 너머의 당사자가 배우가 아니라 정작 벌거벗은 '나 자신'이라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 순간 관객은 객석의 배우가 된다. 이 아찔한 이입의 동질감을 호출한 공력은 온전히 이달형이 그동안 배우로써 일궈온 역사와 노력의 행보를 가늠하게 한다. 연기 인생 25년 차를 맞는 그는 오랜 시간 동안 '가난한 연극배우'로 살아 온 것이다. 그래서 방백 형식을 차용한 민낯의 고백이 맑게 들리는지 모른다.
정갈하고 강건한 힘이 느껴지는 글씨체, 왠지 여자의 것일 것만 같은 편지를 보낸 이는 대체 누구일까? 왜 만나자는 걸까? 과거에 서로 사랑했던 여자일까? 아니면 빌렸거나 떼먹은 돈 받으러 오는 사람일까? 이달형의 실제 인생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에서 그는 중간 중간 노래를 부른다.
발음은 정확하지만 미성은 아닌 열창이다. 그냥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기타를 치고 피아노를 치고 드럼을 칠 때 사람들은 외모를 배신하는 뜻밖의 모습에 환호하고 박수를 보낸 것이리라. 그런데 그 코믹한 상황을 한 꺼풀 벗겨보면 고인이 된 송영민이라는, 이달형이 가슴에 품은 '형님'의 흔적이 적나라하다. 연극 제목이기도 한 <술 한 잔 따라주세요>는 바로 '형님'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그냥 모노드라마가 아니라 '음악이 있는 모노드라마'라는 카피가 괜히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 연극, 죽은 한 남자를 위한 한 편의 시인 것이다. 이렇듯 이달형은 무대에서 분주히 사랑과 죽음을 읊는다. 희망과 절망 사이 그리고 주연과 조연 사이를 오가면서, 그리고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 자를 기다리면서….
그런데 사실은 이 모든 것이 그가 유도한 것이다. 이미 그의 눈에는 객석의 관객이, 이 세상이 한바탕의 '연극'인 것이다. 침묵하는 '배우'들을 향해서 그는 망자에 대한 뜨거운 기억과 부재하는 애정 사이를 오가며 거기서 파생한 자신의 지난 삶을 노래하듯 홀로 부지런히 입을 놀린다. 극이 중반을 넘어설 때 까지도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술병만 하나 둘씩 늘어간다.
관객들은 순간순간 그가 만나기로 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궁금해 하지만 인색한 혹은 옅은 복선과 암시 때문에 쉽게 망각한다. 지난 삶의 기억이 충실하게 기억으로 채색되지 않았다면 아마 이 연극은 초현실주의적인 미스터리가 됐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냄새를 놓치지 않은 점, 연출과 극작과 연기의 교집합이다. 그래서일까? 마치 사랑방에서 들려주는,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할머니의 이야기와 같다. 이 중년 남자의 속살 까발리기에서 나도 모르게 절로 이런 소리가 흘러 나온다. 그래, 그땐 그랬지. 우리 모두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관객 모두 스스로 감상에 빠질 때쯤이면, 악동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이달형은 관객에게 다가가 수작을 건다. 도발하듯 다소 거칠게 공연의 혈(穴) 자리, 흐름의 포인트를 찍듯이 집어준다. 스크린에서는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이 생생한 현장감이 주는 긴장감은 오직 연극의 전유물이 아닐까 한다.
그것이 연출의 몫인지 아니면 애드리브에 가까운 배우의 즉흥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만으로도 그가 25년 경력의 명품조연이라는 것은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는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끌고 100분의 시간을 견딘다는 것, 과연 쉬운 일일까? 거기서 재미와 감동까지 곁들여 가면서 말이다. 모노드라마가 배우의 무덤이라는 불온한 사실을 이해한다면 그의 도전은 그 자체로 박수를 받을 만하다.
15년의 내공, 드디어 빛을 발하는 명품 배우 이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