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의 베트남 여행베트남을 찾는 이들 다수는 단체 관광객이다. 특히,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의 자유여행은 결코 쉽지 않다. 대중교통이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은 중부지방 훼의 거리 풍경.
서부원
한 가지 더. 최근 들어 자유여행을 선호하는 추세라지만, 여전히 베트남을 찾는 이들 다수는 단체 관광객이다. 더욱이 우리 가족처럼 어린 아이들을 대동한 자유여행자는 만나보질 못했다. 그래선지 기차를 타든, 버스를 타든, 관광객들조차 대단하다는 듯 두 아이에게 말을 건네곤 했다. 어른들끼리 다니기에도 베트남 자유여행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곳곳을 찾아다니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큰 도시들끼리는 항공편과 기차, 장거리 버스를 그런대로 이용할 수 있다지만,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이동 수단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자유여행자들도 하롱베이 등 유명 관광지를 찾아가려면 대개 현지 여행사의 패키지 투어 상품을 이용하게 된다. 말하자면, 베트남 자유여행은 '반(半)' 패키지여행인 셈이다.
베트남 여행 상품은 날씨에 따라 다르다?'관광 대국' 베트남답게 여행사가 정말 많다. 여행사마다 판매하는 상품은 종류와 수조차 동일한데, 어이없게도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찾아가는 사람마다, 시간마다, 심지어는 그날의 날씨에 따라 달라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싼 게 비지떡도 아니고, 비싸다고 딱히 품질이 좋은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운'인데, 흥정에 자신이 없다면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다.
관광지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각자 지불한 액수를 비교해보면 당혹스러운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동일한 조건으로 하루 일정을 함께할 이들인데, 지불한 비용이 다 다를 뿐더러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나기도 한다. 하루짜리 하롱베이 관광에 옆자리의 캐나다 사람은 25달러, 앞자리의 이탈리아 관광객은 50달러를 지불했다며 서로 황당해했다. 난 30달러에 계약했으니, 나름 '선방'한 셈이다.
바가지를 썼다고 여겨지면, 비용을 이미 지불한 뒤에도 해약하거나 다시 흥정이 가능하다. 나만의 특별한 경험인지는 모르지만, 호텔 프런트를 통해 구입한 장거리 버스표를 출발 하루 전날 지불한 비용 일부를 돌려받은 적이 있다. 표를 구입하고 하루가 지난 뒤, 우리와 일정이 같았던 다른 이들의 대화를 우연히 엿듣고서다. 그들은 우리보다 표 한 장 당 3달러나 쌌다.
한달음에 달려가 왜 우리에게 비싸게 팔았는지 따져 물으며 환불을 요청했더니, 태연한 표정으로 네 명 분 12달러를 돌려주었다. 물론, 요금을 바꿔 적은 승차권과 함께. 택시를 타는데도 멀쩡한 미터기를 감춘 채 흥정부터 하려고 드는 기사도 여럿 만났다. 관광지 입장료를 제외하고는 대개 이런 식이었다.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고, '엿장수 맘대로'였다.
하긴 조금만 부지런을 떨고 긴장하면 크게 바가지 쓸 일은 없다. 또, 몇 번 바가지를 경험했다고 해서 베트남 사람들을 못 미더워할 필요도 없다. 여행 중 만난 베트남 사람들 대부분은 하나같이 순박하고 친절했다. 특히, 베트남 중부, 마지막 봉건왕조의 수도였던 훼에서 만난 한 젊은 택시 기사의 자상함을 잊지 못한다. 잠깐 소개하면 이렇다.
훼의 대표적 관광지는 미군 폭격으로 폐허가 된 응우옌왕조의 궁성 유적과 도시 외곽에 산재한 일군의 황제릉이다. 궁성은 도시 한복판에 위치해 있으니 문제없지만, 황제릉은 일일이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그 중 일부가 도시를 관통하는 강을 따라 자리하고 있어, 관광객들은 대개 보트 투어 상품을 이용한다. 네다섯 곳을 돌아오는 반나절 코스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그 외에 몇몇 다른 곳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고민하던 차에 보트 투어 대신 택시를 하루 전세 내기로 했다. 다시 흥정이 문제였다. 어느 정도가 적정한 금액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짜고짜 몇 대의 택시를 세우고, 지도를 펴서 가려는 곳을 일일이 짚은 후 가격을 물었다. 싼 게 비지떡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주저 없이 그 중 가장 싼 걸 골랐다.
종일 보슬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기사 입장에서는 우리가 서둘러주길 바랬을 테지만, 우리는 어딜 가든 느릿느릿 태평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우리에게 눈치를 보내기는커녕 트렁크에서 자신의 우산을 꺼내 씌워주고 수건을 건네주는 등 살갑게 대했다. 영어는 거의 할 줄 몰랐지만, 의사소통에는 별 불편함이 없었다. 그의 자상한 '눈빛'과 '손짓'이면 충분했다.
반나절이면 충분한 거리였지만, 점심시간이 다 돼서도 일정의 절반이 채 끝나지 않았다. 내심 미안한 마음에 점심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배가 고프지 않다며 한사코 사양했다. 결국 그는 우리 가족이 식사하는 테이블 바로 옆에서, 마치 수행비서처럼 진득하게 기다려주었다. 참으로 서로에게 멋쩍고 불편한 자리가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