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기기를 구매하려고 사람들이 찾는 곳. 우리에겐 일터다. 아침부터 저녁을 용산전자상가와 더불어 산다.
성낙희
2013년 1월. 서울 용산전자상가라면 삭막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편하게 일할 심산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전자상가에서 각종 기기를 배달하는 일이다. 면접관은 의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얼마 동안 일할 수 있어요?" "6개월 정도 할 수 있습니다." "6개월? 정말이죠?" "...네"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복장은 편하게 입으면 돼요." 다소 충격과 안도감을 느끼면서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그는 다시 확인했다.
"정말 6개월은 하는 거죠? 내일 꼭 와야 해요!"다음 날 아침 9시, 내 직속상관(문 대리)은 전표를 보고 제품을 챙겼다. 이곳은 컴퓨터 부품을 취급한다. 그는 수레를 끌고 길을 나섰다. 나도 따라갔다. 어느 소매점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그는 제품을 내려놓고 전표를 건넸다. 소매점 직원이 전표에 사인해서 다시 줬다. 그쪽 사람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새로 왔나 보네?" "네, 막내가 바뀌었어요." 문 대리가 답했다. 그쪽 사람이 나지막이 말했다. "얼마나 버티려나..."
문 대리는 전표를 재차 강조했다. "전표 잃어버리면 큰일 나요. 잘 챙겨요." 전표에는 거래 업체 상호와 제품 모델명이 적혀 있다. 수량과 가격도 표시돼 있다. 전표는 거래 매출의 '물증'이어서 모두 꼼꼼하게 챙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거래 업체별로 제공하는 제품 가격이 달라서 전표가 다른 곳에 노출되면 큰 사태가 벌어진다. 업체 간 다툼이 생긴다. 심하면 거래 중단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나도 제품과 수레를 다루기 시작했다. 이 상가에서 저 상가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걸었다. 수레를 밀면서 오르막길 앞에 서니 한숨이 나온다. 다리가 아파온다. 길가 벤치를 보면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2시간 동안 길바닥을 걸으니 몸은 늘어지고 눈에 힘이 풀린다.
점심시간이다. 돈가스가 와 있다. 시커멓기만 한데 크기는 피자만 하다. 밥 한 공기와 같이 먹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무척이나 맛있다. 허겁지겁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이전 몇 달 동안 그렇게 게걸스레 먹은 적은 없었다.
문 대리가 나를 불렀다. 부장(면접관)이 어떤 말을 했느냐고 나한테 물었다. 출근 안 할까 봐 부장이 안절부절했다는 것, 6개월 일한다고 했는데 합격한 것이 놀랍다고 나는 말했다. 그는 씩 웃었다. "요즘 두 달 사이에 배달 직원이 세 번이나 바뀌었거든. 어떤 놈은 첫날 배달 나갔다가 그냥 집에 가버렸어. 용산에서는 배달 직원 구하는 게 진짜 어려워." 충격적이었지만 나는 조용히 들었다. 그는 내게 물었다.
"너 진짜 6개월은 할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