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여검사'로 불리는 이아무개 전 검사가 지난 2012년 1월 27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목도리로 얼굴을 감싼 채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0년 9월초, A검사(당시 35세, 여성)는 B변호사(당시 48세)로부터 사건 하나를 부탁받는다. 변호사가 검사에게 청탁을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두 사람은 특별한 사이였다. 오래 전부터 남몰래 내연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던 것이다.
B변호사는 A검사의 마음을 잡기 위해 아파트 보증금을 대신 내주고 다이아 반지, 시계, 골프채 등을 선물하는 등 물량공세를 펼쳐 왔다. B변호사는 2008년부터는 벤츠 승용차를 리스해 주었고, 2010년에는 신용카드 하나를 건네주는 '호의'를 베풀었다.
그러던 중 B변호사는 동업 과정에서 분쟁이 생겨 동업자를 고소했다. 그는 검찰에 있는 연인 A검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2010년 9월 초, 두 사람이 만날 때나 전화 통화를 할 때 B변호사는 "담당검사에게 부탁해서 동업자가 구속되거나 고소 사건이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게 도와달라"고 A검사에게 말했다.
요청을 받은 A검사는 담당검사인 C검사에게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해 주면 좋겠다"는 뜻을 직접 전하기도 했다. 청탁 이후에도 A검사는 B변호사가 제공한 승용차와 카드를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 A검사는 500만 원대 고급 가방을 구입한 뒤 B변호사에게 "가방 값을 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알선과 알선수재 |
'알선'은 남의 일이 잘되도록 주선하는 일을 말하지만 법적으론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법적으로 '알선'은 공무원이 일정한 직무행위를 하도록 매개, 주선하는 것을 말한다. 알선의 수단과 방법에는 제한이 없고, 반드시 부정한 행위를 요건으로 하지도 않으며 단순하게 '선처 바랍니다'라고 부탁하는 정도로도 알선이 될 수 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제3조(알선수재)에 따르면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하여 금품이나 이익을 수수ㆍ요구 또는 약속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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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사실은 B변호사의 또다른 내연녀가 검찰에 진정을 내는 바람에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진상을 조사한 검찰은 A검사의 행동이 단순한 부적절한 관계를 넘어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A검사가 B변호사의 청탁을 받은 2010년 9월부터 2011년 5월까지 신용카드와 벤츠 승용차를 대가로 제공받은 혐의(특가법상 알선수재)로 기소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벤츠 여검사 사건'의 전모다. 정리하자면 B변호사는 A검사에게 승용차와 신용카드를 제공했고, A검사는 B변호사를 위해 담당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호의였을까, 아니면 청탁을 대가로 금품을 주고 받은 범죄였을까. 법원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법적인 쟁점에 따라 '① 청탁'을 받았는지 '② 대가성'이 있는지 여부를 나눠서 살펴보자.
벤츠 승용차, 연인을 위한 호의인가 청탁의 대가인가
먼저 A검사의 입장이다.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그는 "청탁 받은 기억이 없다"고 부인했다. 설사 청탁을 받았더라도 신용카드나 벤츠 승용차 제공은 대가성이 없고, 설사 알선으로 인정되더라도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호의로 한 행위이므로 죄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A검사의 주장이다. 요약하자면 '① 청탁'을 안 받았고, 설사 받았더라도 '② 대가성'이 없다.
하지만 1심(부산지법 제5형사부 재판장 김진석)은 두 사람의 행동을 청탁에 따라 대가를 주고 받은 '거래'로 보았다. 먼저 청탁여부에 대해 법원은 ▲ B변호사가 청탁을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고 ▲ C검사가 'A검사가 가급적 신속하게 처리해 주면 좋겠다는 취지로 부탁했다'는 진술을 한 점 ▲ 두 사람이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으로 볼 때 "청탁을 받았다"고 밝혔다.
특히 B변호사가 사건을 파악해 달라고 요청하자 A검사가 "피의자 이름 알려줘 진행 상황이랑", "응 연락해볼게" 등의 문자를 보낸 사실이 확인됐다. 또 B변호사가 '고소인이 협박하니 사건이 빨리 처리됐으면 좋겠다'고 말한 이후에 A검사는 "뜻대로 전달했고 그렇게 하겠대 영장청구도 고려해 보겠대 상황은 다 설명했어", "C검사한테는 말해뒀으니 그리 알어" 등의 답변도 보냈다.
1심 "사건 청탁, 대가성 모두 인정" 유죄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