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LGBT 인권 모임 '레인보우피쉬'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세모김재용
[기사 수정: 2019년 4월 10일 오후 2시 46분]
창립 14년 만에 정식 동아리로 인정받은 동아리가 있다. 지난해 12월, 교내에서 정식 동아리로 승인받은 중앙대 성소수자 인권동아리 '레인보우피쉬'이다. 이번 새학기부터 교내 동아리 소개 책자에도 소개되어 공개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2월 초, 레인보우피쉬 회원들을 만나봤다. 이들은 성소수자는 '틀림'이 아니고, 이성애자와 '차이'와 '다름'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 자기 소개 좀 부탁해요.
세모(가명) : "레인보우피쉬에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카페인(활동명) : "저는 레인보우피쉬 운영진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레인보우피쉬 동아리 소개 좀 해주세요.
세모 : "그동안 정식 동아리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창립 14년 만에 정식 동아리로 인정받은 성소수자 인권모임입니다. 1999년도에 결성됐고요. 비공식모임으로 활동하면서 공식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는데, 2014년도 12월 6일에야 공식 인정을 받았어요. 성소수자 동아리가 정식으로 인정받은 건 서울대, 고려대, 이화여대, 서강대, 서울예술대, 한양대에 이어 여덟 번째예요. 동아리 이름은 호주 해역에 사는 레인보우피쉬라는 무지개빛 물고기에서 따왔어요."
- 탈락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세모 : "저희도 정확히는 몰라요. 그때 대표였던 분은 지금 군대에 있는데요. 전체 동아리 회장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반대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번번이 무산됐다고 들었어요."
카페인 : "동아리 승인을 발표하는 자리에 저도 같이 가서 본 적이 있는데요. '어? 저 사람이 반대를 해?'라고 할 정도로 종교적인 입장을 떠나서 반대하는 학생도 있었어요."
- 회원들의 활동 상황은 어떤가요?
세모 : "인터넷카페에 가입돼 있는 회원은 370명이에요. 거기엔 졸업생도 포함돼고요. 이 중에서 공식적으로 나와서 활동하는 사람은 10% 정도 됩니다. 매 학기마다 활동하는 회원들의 얼굴은 달라요. 물론 누가 강제로 시키는 건 아니고요. 100% 자발적인 모임입니다. 보통 한 학기에 40~50명 정도 활동을 하고 방학 때는 집으로 내려가 있는 사람도 있어서 20명 정도 볼 수 있습니다. 정모 때 참석하느냐 아니냐를 활동의 기준으로 삼아요. 운영진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20명 정도 되고요."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 성 소수자는 선천성보다 후천성이 많다는 속설이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세모 : "글쎄요. 후천적인지 선천적인지 하는 걸 본인 스스로 인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카페인 : "이를테면 어린 시절 남성으로부터 어떤 트라우마를 얻게 돼서 남자를 멀리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보통 드라마나 영화 등의 미디어를 통해서 동성애 커플에 대한 이미지를 많이 접해요.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그런 미디어를 접하고 동성애자가 된다고 주장하기도 해요. 하지만 미디어 이미지를 통해서 영향을 받는 건 아니에요.
설사 미디어를 접하고 동성애자가 된 사람이 있다면, 그 친구는 원래 성정체성이 동성애자였던 거예요.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다가 미디어를 계기로 들어선 거죠. 만약에 미디어를 통해서 성향이 바뀔 수 있다면 이성애 드라마, 영화를 보면 또 성향이 바뀌어야 하는 건데요. 그런 일은 없죠."
세모 : "전국의 동성애자들 또한 어린 시절부터 숱한 이성애 영화를 봤을 텐데요. 그러면 동성애자들이 존재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 성 정체성이라는 게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건가요?
카페인 : "굳이 정체성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어떤 일반인 친구는 그런 얘기도 해요. 너의 정체성을 너무 속박하지 마라, 정체성이란 유동적일 수도 있는 거라고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또 그런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웃음)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그런 대화를 많이 나눴는데도 아직까지 정확한 답을 모르겠어요.
예전에 미국에서 '동성애 치료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고 해요. 결과적으로 말해서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무디 성경학교의 크리스토퍼 위안 교수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자신이 동성애자에서 기독교를 접하고 탈동성애자가 됐다고 간증을 했어요.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값진 삶에 대해 알라'고 연설을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 분은 탈동성애를 했다기보다는 뭔가 특별한 수행을 통해 성욕을 줄였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아니면 애초에 게이가 아니었을 수도 있는 거고요. 그 분의 말에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어요."
국내에서 처음으로 동성애 결혼식을 공개적으로 해 화제가 됐던 영화감독 김조광수가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자신이 어렸을 때 동네 아이들 과외를 하면서 생계를 꾸리던 형들이 있었다. 이들은 함께 동거했는데,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이웃들로부터도 편판이 매우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이 말도 없이 사라졌다. 행방을 엄마한테 물어보니 혐오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 그 호모들?" 그때까지만 해도 동성애는 혐오스런 '병'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중학교 때 같은 반 남자를 좋아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했다고 한다.
국내 성 소수자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조사된 바는 없다. 다만 대개 인구의 8%가 성소수자인 것으로 여겨지고 이에 따라 국내에는 약 300~400만 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한다. 적지 않은 수임에도 성소수자의 인권 실태는 열악하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와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가 작년에 발표한 '한국 LGBTI(성소수자)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성소수자의 47.5%가 실제로 자살을 시도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우리나라에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뿌리내린 지 20년이 지났지만, 성소수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여전히 차갑다.
- 여러분은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한 때가 언제인가요?
카페인 : "저는 솔직히 그 시점을 가늠하기 어려워요. 초등학교 때는 몰랐어요. 그때는 누구나 이성, 동성에 대한 개념이 모호했을 때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약간 느낌은 있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올라가서 이를테면, 이렇게 표현하면 속물적으로 보이지만 (웃음) 공부 잘하거나 운동 잘하는 (동성) 친구들을 보면 섹시하고 매력적으로 보였어요. 그때부터 자각하기 시작한 때가 아닌가 싶어요."
세모: "저는 저의 성 지향성을 어린 시절부터 느꼈어요. 동성에 끌린다는 느낌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느낀 것 같아요. 동성애라는 개념은 중학교 때 처음 알았어요. 그때 '내가 동성애자'라는 자각을 했어요. 고등학교 때 친구와 담임선생님한테 커밍아웃을 했어요. 담임선생님이 요즘 힘든 게 뭐냐고 묻기에 (제가) 동성애자인 것 같다고 했어요. (웃음) 많이 당황한 것 같았는데 딱히 어떤 편견을 드러내지 않고 넘어갔어요.
그럼에도 편견이 아주 없지는 않았어요. 어느 상담 선생님한테도 상담을 받았는데요. 기독교 교리를 바탕으로 상담을 해주는 선생님이었어요. 그런데 순진하게 그 분에게 얘기를 한 거죠. (웃음) 그 분은 좀 당황하면서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해주었어요. '종이에 네가 좋아하는 여자애 3명을 적어봐라' 따위의 것들이었어요. 아무 의미도 없는 건데... 그리고 조언 아닌 조언을 한 게 정신과에 가서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라는 거였어요. 그분은 동성애가 정신질환의 하나라고 생각했겠지만, 저한테는 상처가 컸어요.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 당시 안 좋은 기억이 있었나요?
카페인 : "중학교 3학년 때 아웃팅(성소수자의 성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을 당했어요. MP3에 남자들끼리 연애하는 애니메이션을 넣고 다녔는데 친구들이 그걸 보고 추궁했어요. 유도 심문에 걸린 거죠. (웃음) 속수무책으로 아웃팅을 당했어요. 그 점을 두고 악의적으로 놀리는 친구들도 생겼어요."
- 어떻게 놀림을 당했나요?
카페인 : "게이들에게 흔히들 하는 혐오 발언들 있잖아요. 개인적으로 친구들이 많았다고 여기던 시기였는데, 아웃팅 이후로 친구들이 다 썰물처럼 빠져나갔어요. 졸업여행으로 롯데월드에 갔는데요. 저 혼자 놀이기구를 타고 있더라고요. 이후 중학교 동급생들이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어요. 나를 아는 친구들이 무조건 소문을 내기도 했어요. 그게 너무 짜증나고 싫었어요. 견디기 힘들어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스스로 커밍아웃을 했어요. 누가 너 게이냐 그러면 '응 맞아' 그냥 당당하게 밝혔어요."
- 친구가 없으니까 외롭지 않았나요?
카페인 : "별로요. 그냥 당당하게 살려고 하니까 나중에는 친구들이 떠나지 않았어요. 그리고 커밍아웃하면서 성소수자들이 주변으로 다가왔어요. 인터넷으로 접촉하든지, 핸드폰으로 문자를 하든지 어떤 방식으로든 제게 연락을 취했어요. 졸업할 때쯤에는 같은 학교에 다니던 성소수자 친구들을 4, 5명 만났고, 그들과 함께 학창 시절의 추억을 가꿀 수 있었어요."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아픔,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