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군 덕산 시장 앞에서 진주농민항쟁에 관해 진주시민단체 활동가 심인경 씨의 설명부터 먼저 들었다. 우리는 수첩을 꺼내거나 스마트폰에 말 하나하나를 옮겨 적으며 귀를 종끗하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야외 수업 나온 아이 같았다.
김종신
드디어 지난 7일, 지리산 천왕봉으로 가는 길목인 경남 산청군 시천면 덕산에 갔다. 덕산은 지리산에서 두 갈래로 나눠어 내려오던 물길이 하나로 만나 덕천강을 이루고 진주 남강을 향해 나가는 곳이다.
4일과 9일이 장이 서는 덕산 장날이 아니라서 거리는 한산했다. 한산한 길가에는 지역 특산품인 곶감이 오가는 차들과 사람들 사이로 보란 듯이 늘어져 있다. 덕산 시장 앞에서 진주시민단체 활동가 심인경씨의 설명부터 먼저 들었다. 우리는 수첩을 꺼내거나 스마트폰에 말 하나하나를 옮겨 적으며 귀를 종긋하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야외 수업 나온 아이 같았다.
진주농민항쟁은 1862년 2월 14일 초군(나무꾼)을 중심으로 한 농민들이 덕산 장시에서 들고 일어났다. 진주 지역의 농민들은 탐관오리의 수탈에 저항하여 몰락한 양반인 유계춘을 중심으로 봉기했다. 당시의 학정이 얼마나 심했던지 결국 자신의 생식기를 자른 아버지까지 생겨났다.
"갈밭 마을 젊은 여인 울음도 서러워라/ 현문(縣門) 향해 울부짖다 하늘 보고 호소하네/군인 남편 못 돌아옴은 있을 법한 일이나/ 예로부터 남절양은 들어 보지 못했노라/ 시아버지 죽어서 이미 상복 입었고/ 갓난아인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3대의 이름이 군적에 실리다니/ 달려가서 억울함을 호소하려 해도/ 범 같은 문지기 버티어 서 있고/ 이정(里正)이 호통하여 단벌 소만 끌려갔네 /남편 문득 칼을 갈아 방안으로 뛰어들자/ 붉은 피 자리에 낭자하구나/ 스스로 한탄하네 '아이 낳은 죄로구나'······."(애절양(哀絶陽)- 다산 정약용)성난 농민들은 관아를 습격하고 조세 대장을 불태웠으며, 아전과 양반 지주의 집을 허물고 불살랐다. 진주농민항쟁은 곧 이웃 마을로 퍼져 삼남 지방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퍼졌다. '임술농민봉기'를 통해 농민의 사회의식은 더욱 성장했다. 2년 뒤 동학농민혁명으로 다시 불타오르기도 했다.
"1862년 진주농민항쟁의 관계자 중 누구도 이것을 예상하거나 의도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단지 현재 자신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진주에서의 이 노력의 결과로 19세기 조선은 새로운 시대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