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청문회장에 쏠린 눈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1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언론 외압' 등 그간 제기됐던 의혹들에 대해 사과했다. 이 후보자가 청문회장에 쏠린 수많은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를 받고 있다.
남소연
"청문회에서 이 후보자의 언론관에 대한 추궁을 준비하고 있던 김 의원실측에선 녹음 파일을 요구했으며, 본보 기자는 취재 윤리에 대해 별다른 고민 없이 파일을 제공했습니다. …경위가 무엇이든, 취재내용이 담긴 파일을 통째로 상대방 정당에게 제공한 점은 취재윤리에 크게 어긋나는 행동이었습니다. 당사자 동의 없이 발언내용을 녹음한 것 또한 부적절했습니다. … 본보는 이번 사태가 취재 윤리에 반하는 중대 사안이라고 보고 관련자들에게 엄중 책임을 묻는 한편,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대책을 마련할 것입니다."<한국일보>는 기자 개인의 일탈행위로 보고 취재윤리 운운하며 해당 기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주장했다. <한국일보>가 지적한 "당사자 동의 없이 발언 내용을 녹음한 것"은 불법 행위가 아니다. 통신비밀보호법상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자가 녹취를 한 행위는 불법이나, 대화에 참여한 자가 다른 자들에게 숨기고 녹취를 한 것은 불법이 아니다.
취재윤리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억지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신문윤리실천요강 2조(취재준칙) 5항(도청 및 비밀촬영 금지)에 "기자는 개인의 전화도청이나 비밀 촬영 등 사생활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라고 규정되어 있지만, 이 조항을 언론의 집중 검증을 받고 있는 총리 후보자에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2조 1항(신분사칭, 위장 및 문서반출 금지)의 경우에도 단서조항으로 "다만 공익을 위해 부득이 필요한 경우와 다른 수단을 통해 취재할 수 없는 때에는 예외로 정당화될 수 있다"라고 적시되어 있다. 이번 사안은 공익을 위해서 반드시 밝혀져야 할 문제이며 국민의 알 권리가 우선되어야 하는 측면이 크다. 따라서 무리하게 2조 취재준칙 위반을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한국일보>는 또한 녹취록을 김 의원에게 전달한 행위를 문제 삼았다. 신문윤리실천요강 14조(정보의 부당이용 금지)에는 "기자는 취재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본인, 친인척 또는 기타 지인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거나 다른 개인이나 기관에 넘겨서는 안 된다"고 적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주식 및 증권정보, 부동산 정보 등을 사적으로 부당하게 이용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하는 조항이지, "취재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무조건 다른 개인이나 기관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도리어 기자윤리를 어긴 것은 이 보도를 보류시킨 당사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이완구 후보가 총리가 된다면, 우리 언론은? "다만 애초 이 후보자의 발언을 보도하지 않은 것이 이 후보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고, 반대로 관련 내용을 야당에 전달한 것 역시 이 후보자를 의도적으로 흠집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밝혀두고자 합니다."<한국일보>의 이런 표현은 이번 녹취와 녹취록 전달이 "별다른 고민 없는" 일개 기자의 "취재윤리에 반한" 행동이며, 그를 엄중히 문책하겠으니 "이 후보자를 흠집 내기 위한 것이 아님"을 믿어달라는, 누군가를 향한 깊은 사과문으로 느껴진다. 답답한 일이다. 혹여 이 사고가 여당의 항의에 대한 사과이거나, <조선일보> 사설과 종편에서 쏟아내는 '기자윤리 프레임'에 대한 변명이라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이번 사안은 한 총리 후보의 부적격보다 한국 위정자의 썩어 문드러진 언론관과 이에 굴종하는 언론의 실체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더 위중한 일이다. 만약 이완구 후보자가 총리가 된다면 우리 언론의 앞날은 참담하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유지되지 못한다. 그렇기에 언론시민단체들은 총리 인준을 막아내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한편 <한국일보>에는 정론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는 '참언론인'이 많다. <한국일보>가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는 <한국일보> 내부의 양심적 언론인들에게 희망을 건다. 먼저 내부에서 이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일보> 사측은 이번 사안의 본질을 직시하기 바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9
민주사회의 주권자인 시민들이 언론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인식 아래 회원상호 간의 단결 및 상호협력을 통해 언론민주화와 민족의 공동체적 삶의 가치구현에 앞장서 사회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입니다.
공유하기
<한국일보>는 왜 독자가 아닌 이완구에게 '사과'했나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