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감초', 느억맘베트남에선 어떤 음식을 먹든 따라오는 양념장이 있다. 멸치를 발효해 만든 '느억맘'이 그것인데, 전혀 비리지 않고 감칠맛이 나는 게 우리 입맛에도 맞다.
서부원
베트남을 여행하다 보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타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어떤 게 베트남의 고유 문화인지 헛갈리고, 나아가 과연 그들에게 고유의 전통문화가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예컨대, 베트남에선 어딜 가나 세계의 모든 종교를 두루 만날 수 있다. 그들이 큰 갈등 없이 자연스럽게 융합된 흔적이 유물로 곳곳에 남아있다. 그만큼 국토가 넓으냐면, 고작 우리나라(남한)의 세 배 남짓의 면적이다.
공자와 관우를 모신 사당 옆엔 가톨릭교회 건물이 오롯이 세워져 있고, 안전한 바닷길을 지켜준다는 여신 천후의 곁에는 힌두교의 시바 신과 비슈누 신을 모신 신전이 자리한다. 세계 곳곳에서는 종교 갈등으로 인한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지만, 베트남에선 그 많은 신들 모두가 그저 친근한 '이웃'이며 오랜 '친구'다. 얼핏 종교적 화해를 넘어 '짬뽕'처럼 여겨질 정도다.
20세기 초 베트남 남부지방에서 발흥한, 예수와 부처와 공자와 무함마드 등을 함께 신으로 떠받드는 신흥종교 '까오다이교'가 그 예다. 대부분이 불교 신자인 나라라지만, 여러 문화들이 뒤섞여있는 까닭에선지 이웃한 태국이나 미얀마 같은 불교적인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다. 집집마다, 가게마다 입구에 향불을 피우고, 매일 제단에 꽃을 바칠 만큼 신심이 강한 이들의 모습조차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융합되는 과정에서 생긴 습속으로 여겨진다.
그들의 언어도 '동서양 융합형'이다. 발음과 억양은 중국어와 유사하지만, 표기는 한자가 아닌 알파벳을 빌려 쓰고 있다. 본디 베트남에는 '쯔놈 문자'라는 게 있었다. 14세기경 중국의 한자에 바탕을 두고 만든 문자다. 그러다보니 한자 지식이 부족한 대다수 사람들이 사용하기가 어려워 널리 보급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제국주의 시대 초기, 베트남에 들어온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알파벳을 활용한 표기법이 고안됐고, 이것이 곧 현재 베트남 문자다.
식당에서 만난 몇몇 서양 관광객들은 이렇게 말했다. 풍광은 더 없이 동양적인데도 흡사 유럽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베트남을 그저 인도와 중국 문화가 반반씩 섞인 곳쯤으로 알던 상식이 깨졌다는 거다. 그들이 '인도차이나'로 뭉뚱그려진 태국과 캄보디아, 라오스 등과 문화적으로 현격한 차이를 느끼는 건, 그곳과는 확연히 다른 음식 차이에서 비롯된 건 아닐는지.
동남아 여행이 처음인 아내와 아이들 역시 떠나기 전 떠올렸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고 말했다. 하노이와 호치민에 즐비한 식민지 시절 건물들과 봉건왕조의 황제 무덤에 장식된 화려한 대리석 조각을 통해 '유럽'을 보고,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호이안의 거리를 통해 과거 '아시아'를 만난다. 두 곳을 한꺼번에 보려면, 베트남 요리를 맛보면 된다. 동서양의 문화가 그대로 식탁 위에 옮겨진 것이기 때문이다. 베트남 요리만으로도 이곳을 찾을 확실한 이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