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민씨가 성북동 공동주택 '따로 또 같이' 앞에 서 있다.
홍현진
'서울 토박이'인 기민씨는 20대 대부분을 목동에서 보냈다. 유난한 교육열로 상징되는 목동에 살면서 그는 "있으면 안 될 곳에 있는 것 같은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2011년, 기민씨는 성북동에 여행카페 '티티카카'를 열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원룸도 얻었다. 사람 없고 조용하고 고층빌딩도 없고. 목동과 전혀 다른 이곳이 그는 좋았다.
"카페 장사도 잘 안 되고, 사람도 없고 심심하니까." '잉여'로웠던 그는 동네에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여행 관련 모임뿐만 아니라, 성북동에서 기민씨가 좋아하는 장소들을 사람들과 함께 탐방하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책읽기 모임도 하고. 그러다 2013년부터 기민씨는 '성북동천'에서 본격적으로 마을활동을 시작했다.
그 해 봄, 기민씨는 '집밥' 모임을 열었다. 이름하여 '저소비 생활자 모임'. 지금까지도 5명 내외의 사람들이 꾸준히 참석하는 공부 모임이다.
"적게 벌면서도 삶의 수준이나 질이 떨어지지 않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번 생에서는 돈을 많이 못 벌면서 살 거기 때문에(웃음). 돈의 많고 적음에 좌우되지 않고 내 삶을 지켜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마음은 있는데 지식이 없고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작은 충격이나 변화에 흔들리게 된다. 게다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하면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자신감이 결여되기도 한다. '동지'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서 모임을 시작했다. 책 보면서 공부도 하고 실제 사례지에 가서 체험을 해보기도 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게 아니다, 라는 것에 대해 동질감, 유대감도 느꼈다."기민씨는 한때 직업군인이었다. 고정적인 수입이 있었던 건 그 때가 살면서 유일했다. 대부분은 "필요할 때 일하고, 필요하지 않을 때 일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았다. 그러다 떠나고 싶으면 훌쩍 떠났다.
자본주의 체제에 잘 적응해 '남들처럼'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돈을 벌고 좋은 집을 사고... 그런 삶에 대한 '욕심'을 억지로 가져보려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30대가 되면서 명확하게 구분하게 되었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해야 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먼저 해야할 것과 나중에 해야할 것을. 기민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저소비 생활자'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자본주의가 요구/조장하는 물질만능, 소비 지상주의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존재 가치와 이유를 돈과 소비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부터 찾음으로써 좀 더 편안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것을 꿈꾸고 실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저소비 생활자의 제1목표는 자본과 소비에 휘둘리지 않음으로써 '내가 주인이 되는 삶'에 있습니다.'
'토닥'과 '빈고' |
'청년연대은행 토닥' http://cafe.daum.net/ybank1030
'청년연대은행 토닥'은 '청년들이 서로 도우며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청년협동조합'이자, 대안적인 '사회안전망'을 표방한다. 일종의 '계'처럼 조합원들이 매달 조금씩 돈을 모아서 공동체 기금을 조성한 뒤, 일정한 심사를 거쳐서 조합원들이 필요할 때 저렴한 이자로 돈을 빌려준다. 청년들이 스스로 만든 상호부조 시스템인 셈. 만 15세에서 39세까지 청년 누구나 매달 5000원 이상의 출자금을 내면 조합원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소액 대출과 청년 재무상담 같은 '금융협동'과 조합원들의 커뮤니티 활동인 '토닥협동', 두 축으로 활동이 진행된다.
'공동체은행 빈고' https://www.facebook.com/bingobank?ref=ts&fref=ts
'공동체은행 빈고'는 해방촌 청년 주거공동체 '빈집'에서 시작되었다. 조합원들이 일정한 금액을 출자해 공동 기금을 조성하면, '공동체 기금'은 빈고 내부 조합원들의 상호 부조를 위해, '지구분담금'은 빈고의 외부, 지구 곳곳에서 삶과 생명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공동체들을 위해 쓰인다. 모든 조합원은 출자금액과 무관하게 1인 1표의 권리를 행사하며 빈고의 살림을 함께 꾸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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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비 생활 공부는 단순히 기민씨 개인 삶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문제를 넘어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2013년 가을, 기민씨는 '청년연대은행 토닥'과 함께 '사회적 금융 스터디' 모임을 시작했다. 지난해 중순부터는 '공동체은행 빈고'와도 함께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다. 저소비 생활자 공부 모임 멤버들과 함께 '토닥' 청년지갑 트레이닝 센터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했다.
기민씨는 "살다보면 자신의 삶의 목표나 꿈, 지향점과 관련 없는 소비를 하게 된다, 대부분 그렇다"면서 이 같은 공부를 통해 "얼마 안 되는 작은 돈이지만 내 삶의 지향점이나 공동체에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쓸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기민씨는 여행 경비 일부를 '토닥'과 '빈고'에서 소액 대출 받았다. 정기적인 소득이 없어 기존 금융권을 이용하기 어려운 기민씨 같은 청년들에게, 이러한 대안금융은 큰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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