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티와 함께한국이 아닌 프놈펜에서 쏘티를 만났다. 언제나 한국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을 만나다가, 이번엔 캄보디아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를 그가 맞이해주었다.
김성희
오토바이를 타고 40분을 달려왔다. 한국에서 알고 지낸 그의 동생과 많이 닮아, 단번에 그의 형임을 알아봤다.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일행 중 한 명은 쏘티와 한국에서 잘 알고 지낸 사이다. 모두의 얼굴이 밝다. 무작정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장남이다. 4형제 중 2명이 한국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었다. 대학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가장이 된 그는 돈을 벌기위해 한국으로 왔고, 곧 이어 남동생도 왔다. 둘은 시화공단의 한 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4년 10개월을 다 채우고 캄보디아로 돌아왔고, 동생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안산에서 일하는 중이다. 쏘티는 어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살면서 못다 한 공부를 한다. 컴퓨터공학 전공이다.
그의 이야기는 한국에서 70~80년대를 살아낸 어른들의 이야기와 흡사했다. 돈이 필요했고, 돈을 벌기 위해 아주 멀리 떠났고, 그 돈으로 집을 짓고, 땅도 샀다. 동네 사람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그 익숙한 이야기에 흠칫 놀란다. 길가의 풍경도, 그의 이야기도, 30년~40년 전 한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 시간여행을 온 기분 같았다.
우리 일행의 궁금증 중 하나는,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버는 돈이 얼마나 많은 돈인가, 캄보디아에서는 어느 정도의 돈을 벌어야 적당한 생활이 유지되는가 였다. 2014년 1월에 최저임금 인상 투쟁으로 5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몇 년째 계속되는 최저임금 인상투쟁, 대체 그들의 임금은 얼마일까?
쏘티가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그래밍을 하게 된다면 200$(22만400원) 정도의 돈을 번다고 한다. 임금 수준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하는 어린 사람들은 보통 70~80$(7만7140원~8만8160),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은행 노동자가 150~200$ 정도라고 한다. 현지 물가는 US달러와 캄보디아 화폐인 리엘이 동시에 사용되고 있다. 쏘티 말로는, 캄보디아 사람들이 리엘을 잘 못 믿어서 그렇단다.
대도시 월세 비용은 버는 돈의 전부나 절반 가까이로 지출된다. 일자리가 많이 없을 뿐 아니라 사회간접자본은 찾기 힘들다. 그들의 임금 수준에 놀라고 나니, 캄보디아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너무도 적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서 버는 돈은, 가족에게 상당히 큰 돈이었다.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돈 벌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쏘티와의 길고 반가웠던 대화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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