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 성스페인 내전 당시 격전지였던 톨레도 성.
곽동운
비사그라 문을 지나 톨레도 성(Alcázar of Toledo)으로 향했다. 톨레도가 역사적인 장소라는 것은, 달리 말하면 이곳에서 수많은 분쟁이 일어났다는 뜻일 게다. 그런 분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 바로 톨레도 성이었다.
톨레도 성은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데 멀리서보면 빈틈이 없는 단단한 하나의 성채처럼 보인다. 로마시대부터 궁성이 있었던 이곳은 수많은 세월을 거치는 동안 계속해서 증개축이 이루어졌다.
현재 톨레도 성의 원형은 카를로스 1세와 펠리페 2세 때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지금의 톨레도 성은 스페인 내전 기간 동안 완전히 파괴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그래서 멀리서 본 성의 형상은 고풍스럽지만 실제 외관의 벽돌 하나하나는 비교적 때가 덜 묻어 있었다.
이렇듯 톨레도 성은 스페인 내전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공간이다. 그와 관련된 유명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소개를 해보겠다.
1936년 7월 27일. 당시 톨레도 성은 프랑코 휘하의 호세 모스카르도(José Moscardó) 대령이 사관생도들과 함께 방어를 하고 있었다. 외곽에서는 인민전선이 진을 치고 성을 포위한 상태였다. 인민전선은 모스카르도 대령의 16살 아들을 인질로 잡고, 톨레도 성을 포기하지 않으면 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을 했다. 그와 관련된 전화 통화 내용이다.
"나는 인민전선군 대장 바르델로 소령이오. 항복하지 않으면 당신 아들을 죽일 것이오.""항복은 없소.""최후통첩이란 말이오."(중략)"아버지. 저 루이스에요.""아들아, 스페인 국민으로, 기독교인으로 만세 두 번을 외쳐라. 한 번은 그리스도를 위해, 다른 한 번은 스페인을 위해….""예, 아버지. 신이여 만세! 스페인 만세!"탕탕어린 소년의 죽음 때문인지 성 안에 있던 프랑코 군은 70일간 지속됐던 인민전선의 포위를 이겨냈다. 이런 일화 때문인지 톨레도 성은 복원과 함께 성역화 작업이 이루어진다. 70일간 계속된 인민전선의 혹독한 포위를 견뎌내고, 성을 지키는 최고 사령관의 어린 아들의 장렬한 죽음까지... 이곳은 이후 '스페인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 되어버린다. 독재자 프랑코는 이를 놓치지 않고 톨레도 성을 선전장으로 활용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