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언론뉴스타파, 오마이뉴스, 국민TV, 프레시안 로고. 이외에도 다양한 대안언론이 생겨나고 있다.
민언련
1970~80년대는 참으로 암울했다. 주류언론만 장악하면 일반인들이 진실에 접근하는 길을 막을 수 있었다. 그 암울한 시절을 경험했던 노년층이 보수화된 것은 설사 당시 체제가 독재인 것에 비판적이었더라도 다른 진실에는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언론들은 정치적 독재에 대해서도 비판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해서도 기득권 논리를 확산시켰고, 노년층들은 그때 흡수한 잘못된 지식과 정보를 아직도 믿고 있다. 지금도 '독재는 했지만, 독재자가 경제를 성장시켰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이유다.
그럼 지금은 어떨까? 현재는 주류 언론들에 실망한 수용자들이 소위 대안언론을 접할 기회가 있다. 그 점은 참으로 다행스럽다. 하지만 대안언론이 존재할 뿐, 대안언론을 수용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소수다. 주류 언론을 대체할 대안언론이 아니라 또 하나의 작은 목소리로 착각하고 있거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다.
이제 우리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의 대안언론은 소수자 언론이 아니다. 기존 언론이 제 기능을 수행하지만, 미처 못 다루는 부분을 메꿔주는 보완적 언론이 아니다. 우리 사회 존재 조건을 고려할 때 대안 언론은 다루는 내용의 범위와 그 질만을 놓고 봐도 불구상태인 기존 언론을 대신할 새로운 '주류 언론'이다. 단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주류 즉 진보 개혁 진영이 소비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흔히 계급에 반하는 투표가 사회 변화를 어렵게 한다고 한다.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언론소비를 하고 있다. 아니, 자신의 계급에 부응하는 언론 소비를 하지 않고 있다.
물론 수용하지 않는 수용자들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지금의 대안언론들은 수용자가 존재 자체를 인지할 수 있도록 자신을 알리고 있는지,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수용자에게 다가가기 위한 별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수용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대안언론들 공동의 노력이 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 부분의 보완이 필요하다.
그래도 수용자들의 노력은 중요하다. 우리 시대의 어른 채현국 선생께서 젊은이들에게 '노인을 봐주지 마라'고 일갈한 진정한 의미는 젊은이도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지금의 비판대상인 노인들처럼 될 것이라는 경고라고 한다. 그 교훈은 기존의 언론에 실망하고 비판만 하면서 좋은 언론을 찾아 소비하지 않는 우리에게 향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의 주류언론에 실망하고 있는 다수가 지금의 대안언론을 수용하면 대안언론은 소수언론이 아니라 주류언론이 될 것이라는 자명한 진리를 생각해보자. 지금의 대안언론이 주류언론이 되는 것. 그게 정치 변화의 출발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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