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페스 환자를 위한 약. 항바이러스제인 발트렉스정이 포함돼있다.
이진혁
헤르페스 환자들에게 남은 희망은 '억제요법(antiviral suppressive therapy)'이다. 억제요법은 기존에 복용하는 항바이러스제 발트렉스(Valtrex)를 소량(500mg)으로 장기간 복용하는 방법이다. 미국과 호주에선 헤르페스 환자들에게 억제요법을 권한다. 실제 지난 2014년 11월 미국 산부인과학회에서 3000명을 대상으로 임상한 결과, 유의미한 완화 증세가 나타났다. 하지만 게시물의 호소처럼 한국에서는 의사로부터 억제요법 처방을 받기가 쉽지 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아래 심평원)은 의사가 처방한 약물의 환자 부담금을 제외한 금액을 의사에게 지급한다. 의사의 과잉 처방은 의료비 상승의 원인이 되며, 국가에서 내는 보험료 상승을 초래하기 때문에 심평원은 이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만약 의사가 환자에게 장기간 발트렉스를 복용하는 억제요법을 시행하려면 매우 복잡한 절차를 거쳐 심평원에 해명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일단 의사가 환자에게 장기간 투약을 시행한 뒤, 심평원이 발트렉스의 투약일 심사결과(헤르페스의 경우 5일)에 대해 이의신청을 해야 하고, 환자 상담 내역을 증빙자료로 제출해야 한다.
만약 의사의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의사가 발트렉스 투약에 대한 국가부담금을 자비로 내야 한다. 평소에 의사와 안면이 없는 환자라면 억제요법 처방을 요청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 대학병원 피부과 전문의인 서아무개(37)씨는 "잘못하면 내가 손해 볼 수도 있는데, 누가 처방을 해 주겠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심평원 한 관계자는 "실제 헤르페스는 심각한 병이 아니고, 완치도 불가능한 병이기 때문에 완화요법에 많은 예산을 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최대한 건강이 아니라 '적절한' 건강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며 "세금으로 운영되는 예산이 제한돼 있다"고 강조했다.
서씨는 "심평원 주장이 이해가 된다"며 "예를 들어 진료비가 1만 원이 나오면 3400원은 환자가 내고 6600원을 국가가 대신 내니, 장기간 복용은 그만큼 국가 부담이 커지는 것"이라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서씨는 "성병의 경우 환자가 느끼는 정신적, 사회적 고통은 육체적 고통을 뛰어넘는다"며 "가끔 심평원의 제한이 과도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심평원의 심사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의사들의 요구가 반영이 안 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부연했다.
'헤르페스 환우모임'에서는 질병과 관련된 논문이나 자료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고통을 줄이고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의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들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를 없앨 의약품은 발명되지 않았다.
한 환우는 "신호등이라 생각한다, 헤르페스가 오려고 하면 '아 몸이 피곤하구나, 쉬어야겠다'라는 몸의 신호등"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언제 '빨간불'이 들어올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2
공유하기
남친이 남긴 말 "처신 좀 잘해" 주홍글씨 성병 '헤르페스'의 악몽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