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대학교 전경 모습.
하지율
매년 1월, 7월이면 대학생들 사이에 엇갈리는 '희비의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바로 국가장학금 소득분위 심사결과 발표 때문이다. 다음 학기에 수백만 원의 학자금 '빚 마일리지'를 적립할지, 한 시름 덜게 될지가 이 발표에 달렸다. 당연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근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국가장학금은 등록금 부담완화를 위해 국가가 학생과 그 가족의 소득 수준을 심사해 장학금을 차등 지급하는 제도로 2012년부터 시행 중이다. 장학금 지급은 학생과 그 가족들에게 가뭄의 단비일 수밖에 없다.
반값등록금 공약... 장학금 대상자만 늘려 놓은 꼼수OECD 최고 수준의 대한민국 등록금 부담은 시민사회에 문제점으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마침내 2012년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새삼 여론을 의식해 등 떠밀리듯 등록금 문제를 주목했다. 당시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도 '반값등록금'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교육부는 지난 5일, 등록금 연간 총액이 14조 원으로 파악되는 가운데, 정부 예산 3.9조 원에 대학 자체 노력을 통한 나머지 조달로 총 7조 원이 지원됐으므로 대통령 공약이 달성됐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대통령 공약으로 탄생한 등록금 공약은 '선택적 복지' 논리가 숨어있다. 소득분위에 따라 저소득층에 더 많이 지원해주고, 전체 대학 재학생 중 절반 이상이 얼마라도 지원은 받게 된 것은 사실이다. 비용적으로는 14조 원의 절반인 7조 원이, 수혜 학생 수로는 절반 이상이 혜택을 받아 사실상 반값등록금이 달성된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교육부와 한국장학재단은 2015학년도 1학기 국가장학금·학자금 대출 등 학자금 지원을 위한 기준금액 및 소득분위 산정 결과를 지난 19일에 발표했다. 특히, 올해 국가장학금 1차 신청자 93만 명 중 80.8%인 75만여 명이 장학금 지급 대상자로 선정했다고 전했다.
올해는 보건복지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활용돼 국가장학금 산정 기준에 기존 상시소득·부동산·자동차뿐만 아니라 금융재산·연금소득·부채 등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월소득 평균액과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한 '재산환산 평균액'을 합친 소득인정액에 따라 산정체계가 새로 마련됐다.
그런데 당사자인 대학생의 반응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최근 한 대학 커뮤니티 게시판은 국가장학금 문제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발단은 교육부와 한국장학재단이 학생과 그 가족의 소득수준 조사에 공정성을 더 확보하겠다며, 올해부터 조사시스템을 '건강보험료DB'에서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사회보장정보시스템'으로 바꾸면서 시작됐다.
그 결과, 조사범위가 다양한 지표로 넓어졌다. 얼핏 보면 장학금이 합리적으로 조정될 것 같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하우스 푸어 가정은 갑자기 소득분위가 고평가돼 주택이 소득으로 환산되는 경우가 늘면서 등록금 부담이 오히려 늘어나는 사례가 생겼다.
고통받는 학생들끼리 "우리 집도 힘들다고요" 마음의 상처만 늘어'선택적 복지' 체계 안에서는 장학금을 덜 받게 된 학생이 생기면 그 몫이 다른 학생에게 간다. 따라서 '집이 있다면 사정이 더 좋으니 당연한 것 아니냐'는 입장과 '집이 있지만 결코 사정이 더 나은 것도 아니라'는 학생들 간에 서운한 말들이 오고 간다.
학비 문제로 '고통'받는다는 점만은 동일한 친구들끼리, 이제는 '누가 더 가난하고 부자인가?', '누가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놓고 인정투쟁까지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본래, 시민사회 등록금 인하 운동의 출발 정신은 '등록금이 절반 정도가 되면 좋겠다'라는 소박한 바람에서 시작됐다. 여기서 '반값'이라는 말에 담긴 함의가 중요하다. 이는 '경제적 사정과 상관없이' 모든 학생의 등록금이 일괄적으로 반값이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좀 더 어려운 학생에겐 반값 이상을 지원해주고, 나머지 학생들은 못해도 반값은 지원해주자는 의미의 반값이다. 지금 정부 '정신승리'하는 반값과는 달리 '선택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라는 두 축이 모순없이 반영된 진정한 의미의 '반값'이었던 것이다.
'선택적 복지'로 온갖 지표들이 '선택과 집중'을 위해 동원된다. 우리는 이것이 숫자의 논리로 실질적 삶을 '추상'한 것일 뿐이라는 점을 망각해선 안 될 것이다. 한계는 존재한다. 문제는 한계를 인정하고, 이를 꾸준히 극복해 나가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숫자가 삶에 봉사하는 것이지, 삶이 숫자에 봉사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생 A씨는 이번 발표 후, 학교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멘트를 남겼다.
"와, 우리 집은 부자다! 소득 2분위 나오다가 이번에 9분위다. 잭팟! 집에 올라오는 반찬도 똑같은데, 식구 중 누가 로또라도 됐나..."'자기 집이 있어서' 장학금 못 받는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