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천>
한만송
1961년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여성이 생물학적 어머니를 찾아 나섰지만 당시 제도 미비 등으로 인해 찾을 길이 없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1957년에 태어난 것으로 돼있는 '김 캐티 크라운'씨는 1959년 11월 미 육군 병장 알버트 데이씨에 의해 서울 고아원으로 보내졌고, 1961년 1월 미국의 한 가정으로 입양됐다. 3세 때 입양된 것이라, 생모와 한국에서의 기억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을 낳은 어머니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결국 '국제사회봉사회'에서 자신의 입양 기록을 어렵게 찾아냈다.
그녀의 입양 기록인 '해외 입양 이민 승낙서'를 보면, 그녀는 1957년 9월 5일 생이다. 그녀의 생모 이름은 김장수. 주소는 '인천시 부평동 287번지'로 기록돼 있다. 생모는 그녀에 대한 권리 일체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해외 입양 이민을 승낙했다. 이 승낙서엔 김순희(부평동 287번지 거주)라는 여성이 증인으로 참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녀는 지난 18일 '페이스북(Facebook)'으로 생모를 찾는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기자에게 보냈다. 기자는 부평구와 부평경찰서를 방문해 알아보는 등 그녀의 생모를 찾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지만, 관련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이민 승낙서에 기재된 주소는 현재 부평구가 보관하고 있는 옛 토지대장 등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당시 어머니와 아는 여성이 아리랑클럽에서 미군 병사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전했다. 이 기억과 부평동 280번지가 현재 부평3동 신촌지역인 점을 감안하면, 당시 미군기지 인근 신촌지역에서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태어났던 1960년 대 인천 부평의 기지촌은 '애스컴 시티(Ascom City)'로 불렸다. 애스컴(Ascom)은 주한미육군병참본부(Army Support Command Korea)의 약칭으로 현재의 부평미군기지로 축소되어 위치하고 있다.
1967년 미군이 작성한 내부 문건을 보면(UNITED STATES ARMY ASCOM DEPOT) 1950년내 에스컴 시티엔 제6의무보급창, 제4통신대, 미 육군 종합 보급창인 제55보급창, 제195·330·74병기 중대, 제 728헌병대 등이 주둔했다. 주한미군의 배치는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
또한 1963년 당시 애스컴 지역엔 7개의 육군 보급창고가 있었다. 이들을 총괄하는 종합보급창이 미8군보급창도 이때 조직됐다. 1962년 당시 주한미군에 근무하는 노동자(노조가입자)만 수천여 명에 달했다. 기지촌 주변에서 생계를 유지했던 일반인들은 더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