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반 후에 나타난 거위들의 고통?2013년 8월 당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소득세법' 개정안을 설명하면서 '거위 깃털을 고통없이 뽑는 창의적 방법'이라 언급했다. 1년 반이 지난 2015년 1월 그 고통이 터져 나왔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2013년 8월 10일자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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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정부가 내놓은 '세제 개편안'에 대한 여론은 지금과 같이 대단히 부정적이었고 거셌다. 언론에서는 '꼼수 증세'라며 비판했다. 그것이 1년 반 전의 일이었다. 조원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은 브리핑을 열어 그 유명한 '거위의 털'을 언급했다. 조 전 수석은 "거위 깃털을 고통 없이 뽑는 것처럼 창의적 방법으로 개선안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해 "국민이 거위냐"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조 전 수석이 언급한 '창의적인 방법'은 다름 아닌 '세액공제'로의 전환이었다. 그동안 연말정산의 핵심은 소득공제였다. '총급여'에서 '근로소득공제'를 뺀 '근로소득'에서 각종 '소득공제'를 반영하는 것에서 연말정산은 시작된다. 기존 인적 추가공제, 보험료, 의료비, 교육비, 기부금 등이 소득공제 항목에서 세액공제 항목으로 전환된 것이다.
방향성만 놓고 본다면 '세액공제'로의 전환에는 분명 '재분배' 효과가 존재한다. 기존 소득공제 체제에서는 '소득공제의 역진성(고소득자에게 유리한 구조)'이 존재했다. 예를 들어 교육비를 통해 500만 원을 소득공제 받는다면 최저세율(6%) 대상자는 세금이 30만 원 줄지만, 최고세율(38%) 대상자는 190만 원이 줄어든다.
반면 세액공제로 전환하면 공제항목별로 일정세율을 반영하게 된다. 교육비 세액공제율은 15%. 500만 원의 교육비를 지출했다면 기존 고소득자는 38% 공제받던 개념에서 일괄 15%로 하향 조정됐고, 반면 저소득층의 환급액은 그만큼 커지게 된다. 세액공제는 저소득자에게 유리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부의 '꼼수'가 개입된다. 저소득자에게 유리한 구조를 그대로 두었더라면 이번과 같은 유리지갑들의 분노는 미미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근로소득공제'를 축소함과 동시에 그 밖의 다른 공제항목도 전격 하향 조정해 버렸다. 근로소득공제 축소, 자녀출생·다자녀공제 등을 폐지했다. 고소득자는 '세액공제 전환'이라는 펀치를 한방 맞고, 각종 축소·폐지로 또 다시 강력한 펀치를 맞게 됐다. 저소득자 입장에서 세액공제는 좋은 취지지만, 다른 축소로 인해 그 효과가 상쇄됐다. 그렇다면 질문은 남는다. 이는 명백한 증세 아닌가?
연말정산 대란을 '홍보부족'이라 생각하는 대통령?박근혜 정부는 소득세법을 개정하면서 '증세는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언급했던 경제수석의 '창의적 방법의 개선안'도 증세가 없음을 강조하면서 나온 발언이다. 그런데 연말정산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직장인들의 반응은 상당히 격앙돼 있다. 정부도 이를 인지했기에 하루 사이에 주무부처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이 긴급 브리핑을 연 것일 테다. 이렇게 두 사람이 진화에 나선 뒤에도 여론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정부와 새누리당은 21일 오후 긴급회의를 열어 보완책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정부 추산 자체로도 소득세를 통해 세수가 9000억 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추산이 어느 정도 정확할지는 정산이 완료된 이후에 확인이 가능하겠지만 9000억 원 증가는 증세가 아닌가? 2013년 8월 세제개편 당시에 '증세가 맞다'고 언급했더라면 샐러리맨들의 분노가 이 정도까지 치솟진 않았을 것이다. 복지가 확대된 것은 사실이고 대가 없는 복지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위의 털' 운운하며 1년 반 동안 이 정부는 '증세 아니다'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것이 영원히 숨길 수 없는 것이었더라면 솔직히 인정하고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맞지만 박 대통령은 그렇지 않았다. 20일 청와대 국무회의 자리에서까지 박 대통령은 '국민의 이해'를 언급했다. 이는 대통령의 현 연말정산 정국을 바라보는 한 대목인데, 결국 이 사태를 '홍보부족'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노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