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선정 성폭력 피해자 인권 보장 디딤돌 수상자들.20일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프라자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디딤돌로 선정된 수상자와 대리수상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디딤돌/걸림돌' 시상식은 성폭력 피해자가 수사, 재판과정에서 받는 2차 피해를 감시하기 위한 활동 중 하나다.
손지은
20일 오후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프라자 1층 국제회의장에 환호성과 야유가 잇따라 터져 나왔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주최로 열린 '성폭력 수사·재판 과정의 디딤돌·걸림돌 시상식' 자리였다. 전국에서 모인 140여 명의 반성폭력 활동가들은 지난해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데 기여한 디딤돌에게는 박수를, 그 반대 역할을 한 걸림돌에게는 야유를 보냈다.
협의회는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된 법률구조사건 중 전국 활동가들의 추천을 받은 뒤, 심사위원단의 심사를 거쳐 최종 선정했다. 심사위원단은 변호사와 법학자, 성폭력상담소 소장 등으로 구성됐다. 이 시상식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수사와 재판을 거치면서 받는 2차 피해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활동의 일환이다. '디딤돌'로 선정된 개인이나 수사관, 재판부에게는 상패와 꽃다발이 수여되지만, '걸림돌'로 지목된 개인이나 기관에는 선정 이유를 적은 '경고장'이 공문으로 발송된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구체적 피해 일시와 사건 장소 등을 특정하지 못하는 지적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해 수사와 재판을 진행한 전주지방검찰청과 전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를 비롯한 총 일곱 사건의 담당자들이 '디딤돌'로 선정됐다. 반면 성추행과 과도한 업무 지시로 여군대위가 자살한 사건의 가해자인 노소령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제2군단 보통군사법원 군판사를 포함한 총 다섯 사건의 담당자들은 '걸림돌'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연예기획사 사장 무죄' 사건 재판부, 디딤돌·걸림돌로 희비 엇갈려"이날 시상식에서는 같은 사건을 판결한 1·2심 재판부와 대법원이 각각 디딤돌과 걸림돌로 엇갈리기도 했다. 협의회는 지난해 11월 여중생을 상습 성폭행함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 제3부 민일영·박보영·김신·권순일 대법관을 걸림돌로 선정했다. 반대로 같은 사건에서 가해자에게 중형을 선고한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1형사부 김기영·오흥록· 류영재 판사와 서울고등법원 제12형사부 민유숙·박해빈·심활섭 판사를 디딤돌로 선정했다.
사건을 정리하면 이렇다. 지난 2011년 40대 연예기획사 대표 조아무개씨는 자신의 아들과 같은 병원에 입원해있던 15살 여중생과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치자 명함을 건네며 접근했다. 연예인 이야기로 경계를 누그러뜨린 조씨는 여중생을 자신의 차량으로 불러내 성관계를 맺었고, 이후에도 둘의 관계는 지속됐다. 임신한 채 가출한 여중생은 조씨의 집에서 지내다, 출산 직후 빠져나와 그를 상습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남성은 '연인사이'였다고 주장했다.
1·2심 재판부는 '순수한 사랑이었다'는 가해자의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고 각각 징역 12년, 9년을 선고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피해자에게 가해자는 사회·경제적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이며, 이후 둘이 연인 사이로 발전했어도 처음 성관계를 맺었을 때 강제력이 있었다면 강간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여중생이 처음 성관계를 한 뒤 신고하지 않았고, 카카오톡 메시지와 편지로 '사랑한다' 등의 애정표현을 한 점을 종합해볼 때 둘은 연인 사이가 맞다고 본 것이다. 여중생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김씨가 화를 냈기에 어쩔 수 없이 보낸 것이라며 자발성을 부인했다.
이에 협의회는 대법원이 피해 과정이 오래 지속되면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양가감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봤다. 또한 성폭력 피해 이후 상황을 적극적으로 대처할 책임을 피해자에게만 전가했다고도 지적했다. 1·2심 재판부에게는 수사재판과정에서 난무하는 주장을 피해자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태도를 보인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걸림돌 사건 5건 중 3건이 군성폭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