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나온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 규명을 위해 9일 오전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최근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에 대해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깊이 자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이 문건 유출 사건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사과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남소연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수석의 출석거부→해임→운영위 파행 및 회유의혹 무마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을 여권이 준비한 사전 시나리오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특히 김 수석이 국회에 나오라는 여야의 합의는 물론 비서실장의 지시까지 거부한 사상 초유의 사태가 혼자만의 판단은 아닐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청와대가 잃은 것도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반대의 시각도 있다. 우선 김 수석의 항명으로 국정을 이끌고 나가야 할 청와대의 공직기강이 붕괴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또 '영이 서지 않는' 김기춘 실장도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게 돼 거취 문제가 또다시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 실장은 지난 2일 청와대 비서실 시무식에서 "기강이 문란한 정부조직이나 집단은 효율적으로 일할 수 없다, 비서실 기강과 규율을 더욱 확립해서 모든 정부기관의 모범이 돼야한다"라며 군기 잡기에 나섰다. 그러나 불과 일주일 만에 청와대에서 가장 핵심부서 중 하나이자 공직기강을 다잡는 데 앞장서야 할 민정수석실의 수장이 '일탈'을 했다.
김 실장은 이날 운영위에서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운영위 소속인 한 야당 의원은 "김 실장도 황당무계하다는 표정이었다, '공직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도 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김 수석의 처신을 놓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반응이 나왔다. 민경욱 대변인도 "이번 일은 청와대도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상황"이라고 말했다.
야당의 비판도 거세다. 박완주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공직기강의 문란함이 생방송으로 전 국민에게 중계된 초유의 사태"라며 "청와대 내부시스템이 철저하게 망가졌고, 근무기강을 바로 잡겠다는 김기춘 실장의 약속이 잉크도 마르기 전에 무참히 짓밟혔다"라고 비판했다.
'문고리 3인방' 중 맏형격인 이재만 총무비서관의 이날 운영위 처신도 논란거리다. 김 실장은 정윤회 문건 유출에 사과하면서 거취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김 실장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이 비서관은 사과를 거부했다. 다만 "주어진 소임에 최선을 다할 따름"이라는 대답만 했다.
유임 가능성 점쳐지던 김기춘... '항명 사태'로 교체?김 수석의 항명 사태는 박 대통령에게도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우선 청와대 인적쇄신 요구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정윤회 문건' 유출을 '개인적 일탈'로 마무리 지으면서 김 실장은 책임론에서 비켜나 박 대통령의 재신임을 받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김 실장이 청와대 내부 단속에 실패하면서 청와대 비서실 장악력에 문제점을 드러낸 데다 이번 사태로 정윤회 문건 유출 및 사후 대처 과정에서 불거졌던 책임론이 다시 부각되면서 거취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박 대통령도 오는 12일로 예정된 신년 기자회견에서 비서실의 항명사태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박 대통령이 입장을 직접 밝혀야 한다"라고 압박하고 있다.
또 '정윤회 문건' 사태를 검찰의 '면죄부'로 마무리 짓고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경제 및 남북관계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국정동력을 회복하겠다는 구상도 흐트러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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