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고 싶은데... 야간근무 끝나고 오면 짜증이"

[노동시간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들 ④] 밤낮 없는 노동시간

등록 2015.01.09 10:43수정 2015.01.09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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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사 중 이런 대목이 있었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우리의 역사는 독일의 광산에서, 열사의 중동 사막에서, 밤새 불이 꺼지지 않은 공장과 연구실에서, 그리고 영하 수십 도의 최전방 전선에서 가족과 조국을 위해 헌신한 국민들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해가 지고 밤이 되면 몸의 생체시계는 푹 자고 쉴 시간이 되었다고 알려주는데, 따뜻한 가정에서 함께할 가족이 기다리는데 왜 이를 외면하면서 국민들은 헌신해야 했을까? 아니 왜 여전히 그 헌신을 거부할 수 없게 되었을까?

밤에도 일하는 이유

현대에도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불가피하게 밤에도 일해야 하는 직업이 있다. 밤에 난 불을 누군가는 꺼야 하고, 밤에 아픈 환자를 돌봐야 하는 등 전기, 가스, 운수, 수도, 통신, 병원 등 공공서비스가 바로 이런 경우이다. 또한, 철강제조, 석유화학 등 생산과정이 연속되어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맞춰서 작업을 중단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밤에 일하는 것의 상당수는 이런 불가피한 일이 아니라 기업의 이윤을 위한 것이다. 경영효율성을 위한 생산설비의 완전가동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게 되고, 장시간 노동은 해가 진 밤까지 이어진다.

이제 밤낮없이 일한 노동자들이 퇴근 후에도 소비할 수 있도록 각종 서비스업종의 노동자들이 역시 밤에 일한다. '연중무휴', '24시간 오픈'은 이미 오래전부터 24/7사회(하루 24시간 주 7일 일하는 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에서 익숙한 문구이다.


몇 가지 통계조사를 이용해서 우리나라의 야간노동 현황을 살펴볼 수 있다.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2010년) 에서는 야간작업 근로자가 약 127만 명으로 전체의 11.2%로 나타났고, 국민건강영양조사(2007~2009년)에서는 약 197만 명으로 전체의 14.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노동패널조사(2008년) 에서는 약 134만 명으로 전체의 10.2%를 차지하였다. 자영업자를 포함하여 전국의 취업자를 대표하는 표본조사인 취업자근로환경조사의 경우 야간노동 (22시부터 다음날 5시까지 최소 2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의 비율이 2006년 20.4%, 2010년 13.4%, 2011년 13.2%의 비율을 보였다.

우리나라 취업자근로환경조사가 모델로 삼은 유럽의 취업자 근로환경조사에서는 유럽 27개국에서 야간노동을 포함한 교대노동에 종사하는 비율이 17.3%로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높았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에 대해 유럽국가들의 경우 주당 근무시간이 30~40시간 정도로 짧은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유럽에서 교대노동으로 소화하는 업무량을 연장근무와 야근으로 보상하는 측면이 있다고 해석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어쨌든 공식적인 통계수치만으로도 상당한 수가 야간노동을 하고 있다.  


야간노동과 노동자 건강

사람의 몸은 생물학적 리듬에 따라 유지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하루 주기의 리듬인데 체온이나 호르몬의 농도, 질병의 증상 등이 이 리듬에 따라 조절되고 이 리듬은 주로 태양 빛에 따라 자극을 받게 된다.

비행기를 타고 멀리 여행을 떠날 때 며칠이 지나면 태양 빛에 따라 새로운 시간대에 신체와 생활이 적응을 하게 되지만 야간노동이 포함된 불규칙한 교대근무를 하게 되면 결코 적응할 수가 없다. 고정적인 야간노동을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노동자를 둘러싼 사회는 다른 시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역시 밤낮을 완전히 바꿔 적응하긴 힘들다.

"나이트(야간 근무) 들어갈 때는 심지어 낮에 자려고 억지로 밤을 새요. 졸린데도 아침 7시나 9시까지 밤을 새고 낮에 좀 자려고 해요. 낮에 자고 밤에 잠이 안 오면 그 시간이 저에게는 너무 고통이니까. 나이트를 기본 3일씩 하는데 3일 하는 내내 거의 잠을 자는 게 정말 몇 시간 안 돼요." 
"데이(낮 근무)는 데이대로 스트레스죠. 저는 두 시간 마다 깨요. 개인적으로 10시나 11시정도에 자는데 집이 머니까 적어도 5시30분에는 출발해야 하는데 뭐 준비하다 보면 4시30에는 일어나야 해서 못 일어날까봐 걱정이 되어서 두 시간 마다 일어나게 돼요. 한숨도 안자고 오는 간호사도 있어요."
"밖에서 하는 소리가 다 들려요. 계속 뒤척거리는 거죠. 이미 잠은 깨어 있는데 누워 있는 느낌 아시죠? 깊이 잔 적은 없는 거 같아요. 술 먹으면 좀 깊이 잘까..."

수면장애처럼 금방 드러나지는 않지만 야간노동은 우울증상, 불안증상을 악화시키거나 규칙적인 식사를 어렵게 하고 소화효소 분비가 교란하여 소화기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혈압과 심장박동과 같은 심혈관계의 조율기능에 영향을 미치며 스트레스를 높여 뇌심혈관질환 위험을 높일 수도 있다. 암과의 관련성, 특히 유방암에 대해 국제암연구소가 '생체리듬을 교란시키는 교대근무'가 사람에게 발암 가능성이 높다는 'group 2A' 등급을 매기기도 하였다.

야간노동과 노동자의 삶

사회가 움직이는 일반적인 사이클과 다르게 움직이는 경우 신체적 정신적인 건강뿐 아니라 가족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삶 자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야간교대노동자들은 사회적 관계, 가족 생활, 여가 계획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호소하고 있다.

"일단 친구들이 더 없어지고요, 사람도 못 만나고 몸이 너무 힘든 것 같아요. 휴가 때에는 거의 잠자는 것밖에 안 해요. 학원을 한번 다녀볼까 시도를 했는데, 검도를 끊었는데 두 달 동안 6번 갔어요. 근무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포기했어요."
"저는 육아 문제가 가장 힘이 듭니다. 데이면 아이를 남편이 맡기고 출근하면 제가 찾아오면 되지만 이브닝일 때는 남편이 아닌 제 3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어머님이나 시어머님께 맡기면 편하겠지만 저희는 그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서 어린이 집에 의존해야 하거든요. 지금은 학교 선생님인 언니가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오래 살아서 우리 예쁜 애들 오래 보고 싶어요. 아이들하고의 생활이 가장 절실해요. (그런데) 제 생각에 지금 제 몸 상태에 오래 살 거 같지 않거든요. 야간근무 끝나고 와서 자다 보면 짜증이 조금씩 쌓이다가 빵 터져서 밖에 나가서 애들 한 대 두드려 패고 조용하라고 혼내고 들어와서 누워가지고, '왜 그랬을까' 후회도 되고..."

이처럼 가족과 친구 등 가까운 관계들로부터 소외되고,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여가활동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삶 전체가 피폐해지고 만다.

좋은 노동시간 (Decent working time)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1999년 '좋은 노동 (Decent work)'이라는 개념을 발표한 데 이어 2004년 '좋은 노동시간 (Decent working time)'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였다.

"노동시간의 배치는 1) 건강해야 하고, 2) 가족 친화적이어야 하며, 3) 성별평등을 증진시켜야 하고, 4) 기업의 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5) 노동자가 스스로의 노동시간에 대해 선택하고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면서 나머지 4개의 영역을 함께 달성할 수 있는 노동시간의 배치가 과연 가능할지, 심히 의문이 들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개념에 비추어 볼 때 야간노동을 포함한 '비표준적 노동시간**'은 결코 좋은 노동시간이 되기 어렵다.

노동자의 건강과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노동시간의 절대적 길이를 줄이는 한편 이 비표준적 노동시간을 줄여나가야 한다. 이 때 경계해야 할 점 하나는 더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비표준적 노동시간의 노동이 전가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서구사회에서 "누가 비표준적 노동시간에 일하는가?"에 대해 연구하면서 노동시장을 이해하는 데에 사용되었던 개념 중 대표적인 것이 "중심-주변 노동자(core-periphery)" 개념이다. 이는 전일제 정규직 '중심' 노동자가 질 좋은 일자리에서 표준적 노동시간에 일하고 파트타임 등 비정규 노동자가 '주변' 노동자로서 나머지 비표준적 노동시간을 채운다는 해석이다.

한국도 점차 장시간 노동시간을 줄이고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 등 비표준적 노동시간을 줄여나가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으므로 이런 예상되는 문제점에 특히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야간노동 어떻게 할까?

"의학적 측면에서 야간 노동에 종사하는 시간(기간)을 줄이지 않는 한, 교대 근무를 순환식으로 하건 고정적으로 하건, 그 어떤 변화로도 해악을 줄일 수 없다. 가족과 사회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교대 근무 스케줄을 조정하는 방법은 하루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아무리 노동시간을 줄인다고 해도 생리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야간노동을 하면서도 건강을 해치지 않기 위한 대안은 없다." - 국제노동기구(ILO)

일의 타고난 성격 때문이 아닌 이윤을 위한 야간노동은 철폐되어야 한다. 일의 타고난 성격으로 야간노동이 불가피하다면 노동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이런 목표는 현재로서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럼 충분히 임금을 받을 수 있을까? 내 일자리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장시간 노동, 야간노동에 지쳐있는 노동자 스스로의 불안과 공포가 현재의 노동시간 패러다임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그 불안과 공포에 대안을 만들어내고 설득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권리이자 임무일 것이다.

* 인터뷰 내용 출처: 「고려대학교병원 노동자의 교대제 개선을 위한 노동조건 실태조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2009)」, 「금속노동자 수면장애 실태조사 보고서(2011, 전국금속노동조합,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야간근무는 '정상적인 낮 시간의 근무' 즉, 일주일 중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 사이, 하루 오전 7시에서 오후 7시 사이의 노동이 아닌 경우는 모두 해당.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혜은 기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준)의 회원이며,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또한 위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일터> 통권 130호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야간노동 #노동자 건강 #노동시간 #교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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