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방패 공격 당한 친구, 당신은 어쩔 텐가

[주장] 연이은 장애인권운동 활동가 구속, 의도된 탄압 멈춰야

등록 2015.01.06 19:31수정 2015.01.06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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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길을 가는데 누군가 길을 막고, 내 친구를 때리면 나는 어떨까?
누가 내 친구를 비하하고, 놀리면 또 어떨까?
내 주위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나는 어떨까?

중증장애인 활동보조인이라는 직업이 있다. 혼자서 가사 활동, 이동, 신변처리 등이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한다. 장애인들의 투쟁으로 2007년부터 시작됐다. 서비스 성격상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고, 때로는 가족 이상으로 긴밀한 관계가 되기도 한다.

새해 벽두부터 장애인권운동 활동가의 연이은 구속

 4월 10일 국민연금공단을 찾은 고 송국현
4월 10일 국민연금공단을 찾은 고 송국현비마이너
2014년 4월 10일. 몇몇의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서울 광진구 광장동 국민연금공단 앞을 찾았다. 이들은 국민연금공단 내 장애등급심사센터에 장애등급제와 활동보조 서비스 등과 관련해 긴급하게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 자리에는 누군가가 굳은 표정으로 휠체어에 앉은 채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장애인 수용 시설에서 20여년간 생활하다 지역사회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보려고 나온 송국현이었다.

그로부터 3일 뒤인 4월 13일. 송국현의 집에는 불이 났고, 송국현은 새까맣게 그을린 채 발견되었다. 불과 3일 전 휠체어에 앉은 채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던 송국현은 온 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병원에서 사경을 헤맸다. 만약, 3일 전 그와 친구들이 긴급하게 요청한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았더라면, 송국현은 검게 그을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화재가 난 다음 날인 14일. 송국현의 친구들은 장애등급심사센터에 항의하러 모였다. 대부분이 송국현과 같은 처지이거나 그런 처지에 놓일지 모르는 장애인 당사자들과 그들의 활동보조인들이었다.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은 장애등급심사센터에 항의하러 가고자 했고, 경찰은 이를 저지했다. 분노한 참가자들과 저지하고자 하는 경찰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함께 있던 비장애인활동가와 활동보조인들은 자신들의 이용자가 경찰의 방패에 밀려 이리저리 채이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국민연금공단 장애등급심사센터가 송국현씨 사건에 대한 장애인계 사과 요구에 '경찰 방패'로 응답했다.
국민연금공단 장애등급심사센터가 송국현씨 사건에 대한 장애인계 사과 요구에 '경찰 방패'로 응답했다. 비마이너

 집회에서 폭력행위는 언제나 그렇듯 일방적이지 않다. 그러나 기소되는 것은 항상 한쪽편이다. 그리고 이것은 집회의 폭력성으로 포장되기 일쑤다.
집회에서 폭력행위는 언제나 그렇듯 일방적이지 않다. 그러나 기소되는 것은 항상 한쪽편이다. 그리고 이것은 집회의 폭력성으로 포장되기 일쑤다. 비마이너

크고 작은 충돌이 있었고, 참가자와 경찰 모두 피해자가 속출했다.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난 상황 자체는 유감스러웠지만, 그 피해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지울 것인가 하는 대목에서는 뭐라 말하기 힘들다.


그런데 그로부터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그날의 폭력행위 등을 이유로 지난 12월 2일 장애인권운동을 함께 하던 박승하 활동가가 구속됐다. 그리고 활동보조인 활동가 한 명 역시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돼 오는 8일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있다(관련기사 : 박승하 활동가, 故 송국현 집회 등 이유로 구속).

장애인 집회에서 경찰의 폭력과 약올림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경찰 바로 앞에 있는 가운데 경찰이 무차별적으로 최루액을 난사하고 있다.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경찰 바로 앞에 있는 가운데 경찰이 무차별적으로 최루액을 난사하고 있다.최인기

사실 장애인 집회에서 경찰의 폭력과 약올림은 이미 도를 넘었다. 지난해 4월 20일 장애인의 날, 장애인도 고속버스를 타자는 캠페인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장애인들에게 최루액을 정조준하기도 했다.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뒤늦게 현장 지휘관을 경고조치하고 유감을 표했지만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다.

문제의 집회에서 신체가 왜소한 지체장애인은 경찰로부터 "밥풀떼기"라는 약올림을 당했다. 장애인 집회에서 경찰들이 전동휠체어를 마음대로 조작하는 일은 다반사다. 이는 장애인에게 매우 수치스럽고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자체로 장애인 차별이다. 이 경우 장애인 당사자 바로 옆을 지키는 활동보조인들이나 비장애인 활동가들의 마음은 어떨까.

장애인 인권을 쟁취하기 위한 활동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집회나 시위도 그 중 하나다. 대부분 장애인 당사자들이 주도하지만 활동보조인 등 비장애인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신체가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 당사자들 곁에서 비장애인 활동가들이나 활동보조인들이 대신해야 하는 부분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주차블록을 이용해 장애인의 접근을 막는 경찰. 한숨만 나온다. 장애인은 이동을 못하는데, 자유롭게 걸어서 저지선을 넘을 수 있는 비장애인 활동가나 활동보조인들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2013년 8월 전북도청에서.
주차블록을 이용해 장애인의 접근을 막는 경찰. 한숨만 나온다. 장애인은 이동을 못하는데, 자유롭게 걸어서 저지선을 넘을 수 있는 비장애인 활동가나 활동보조인들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2013년 8월 전북도청에서. 비마이너

 경사로만 가로막은 경찰들. 같은 시간 비장애인들은 계단을 통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다. 2013년 8월 은평구청.
경사로만 가로막은 경찰들. 같은 시간 비장애인들은 계단을 통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다. 2013년 8월 은평구청.비마이너

혹시 경찰이 이런 부분을 악용, 장애인 집회에 대응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비장애인은 계단을 이용해서 이동할 수 있게 해 놓고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경사로만 막아둔다. 활동보조인이 옆에 있는데 장애인의 휠체어를 임의로 조작하기도 한다. 혹은 장애인을 약올린다. 그래서 곁에 있는 비장애인 활동가들이나 활동보조인들을 흥분 시키고, 항의하게 한다. 이후에는 채증해 출석요구서를 보내고 기소한다. 소설같은 이야기이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이게 소설이 아니라면, 비장애인 활동가들을 연이어 구속해 장애인권운동을 위축시키고 그 날개를 잘라버리려는 의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번에 구속된 박승하 활동가나 영장이 청구된 양유진 활동가나 모두 비슷한 경우다.

온 대한민국이 그랬지만, 특히 지난 봄에서 여름에 이르기까지 장애인권운동 활동가들은 너무 아픈 시기를 보냈다. 4월 13일 송국현의 화재, 세월호 참사와 같은 날 발생한 오지석의 사고, 4월 17일 송국현의 죽음, 6월 5일 연이은 오지석의 죽음 그리고 8월에는 원치 않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꽃동네 방문까지.

자립생활을 꿈꾸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당사자들과 그들 곁에 함께 있던 비장애인 장애인권활동가들과 활동보조인들. 내 친구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그 일이 나의 일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던 이들은 지금 큰 위기에 놓여 있고 장애인권운동이 탄압받고 있다.

이런 식으로 양유진과 박승하를 빼앗기고 싶지 않다.

양유진, 박승하를 위한 탄원서 함께 쓰기
덧붙이는 글 글쓴이 임영희는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입니다.
#장애인 #송국현 #양유진 #박승하 #장애등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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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보다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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