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0일자 <경향신문> '장도리'
경항신문
- 20년 동안 개인적으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작품과 아쉬웠던 작품을 뽑아 주세요."먼저 아쉬운 작품을 말하자면, 많죠. 시간이 지나고 '좀 더 잘할 걸 그랬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긴 하지만, 마감 하면 생각 안 하려고 합니다. 왜냐면 다음 날 또 작업을 해야 하는데 마감한 걸 생각하면 스트레스 때문에 못해요. 그래서 후회할 일이 있어도 웬만하면 안 하죠. 이미 지나간 것은 독자들이 판단해야지 제가 후회해야 소용없잖아요.
잘한 것은 웬만하면 생각하려고 해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것과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작가의 손을 떠난 것은 독자들의 생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봤을 때 독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게, 지난 대선 때 88만원 세대를 소재로 했던 만화가 있었어요. 그 대선이 가장 첨예했잖아요. 세대 간의 대결도 있었고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 등 두 진영으로 갈린 선거였잖아요.
그때 88만원 세대에 대한 소외가 있었다는 내용을 그린 게 있어요. 그 내용이 뭐냐면 산업화 세대는 자기들 덕에 대한민국이 발전했다고 주장하고 민주화 세대 역시 자기들 덕에 우리가 민주화를 이뤘다고 서로 주장하는 거예요. 서로 잘났다고 말하는데 목이 타잖아요, 그래서 소리를 치니까 88만원 세대가 물통을 지고 물을 가져다주는 만화인데, 그게 많은 공감을 얻은 것 같아요. 물론 저도 만족하는 작품 중 하나예요."
- 천문기상학과 건축공학을 전공했는데, 만화는 어떻게 시작했나요?"만화는 어릴 적부터 그렸고 보는 것도 좋아하고 생활의 일부였어요. 4년간의 대학 전공이라는 것이 직업 선택의 계기가 될 수는 있지만 사람의 길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제가 전공한 천문학과 부전공인 건축공학 역시 저의 사고에 영향을 줌으로써 만화 작업에도 분명 도움을 줄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공부는 만화작업에 도움이 되면 됐지 방해가 되진 않습니다. 만화 그리기는 어린 시절부터 생활의 일부였고 대학 시절엔 만화 동아리 활동을 통해 여러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는 일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원래는 극화를 하려고 했는데 <경향신문>에 입사해 연재를 하면서 시작했죠."
- 초기엔 힘들기도 했을 것 같은데."물론이죠. 처음엔 매일 연재하기나 네 컷이란 방식 등 모든 게 힘들었어요. 그러나 결국 사람의 모든 일은 훈련이 중요하다고 봐요. 훈련을 통해서 익숙해진다고 생각해요. 반복해서 하다보면 길이 보이는 것 같아요."
- '장도리'라는 이름에 의미가 있나요?"장도리는 못을 박거나 뽑는 도구입니다. 아주 작은 도구인데도 여러 가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유용한 것 같아요. 이름 자체가 발음하기도 좋고 재미있고요."
- 시사 만화가로서 보람이 있다면 무엇인가요?"매일 매일 시대가 흘러가잖아요. 매일 지속적으로 기록을 남긴다는 것, 1년의 분량이 모이면 나중에 뒤돌아 볼 수도 있고 당시의 생생한 현장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에서 보람을 찾고 싶습니다."
- 만화 저널리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만화에도 여러 종류가 있죠, 과거에는 잡지 형태를 통해 연재되었고 최근엔 인터넷을 통해 웹툰 방식으로 연재되는데 결국 만화라는 건 출판물이고 인터넷이든 잡지든 신문이든 크게 보면 저널리즘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만화를 그리는 작가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저널리스트로서의 소양을 키워야죠. 그리고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여타 기사 형식과 달리 만화는 시각적인 요소와 스토리를 통해 단순한 메시지가 아닌 감성적인 뉘앙스를 포함하여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장르에 비해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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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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