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녕하지 않습니다"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학내 대자보 '안녕들하십니까?'로 주목받게된 고려대 주현우씨와 이에 동참하는 참가자들이 지난해 12월 14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서 모여 철도민영화를 반대하는 '서울역나들이' 행진을 앞두고 집회를 열고 있다.
이희훈
물이 99.999℃로 끓어오른 상태에서 0.001℃만 더 끓어올라도 수증기라는 전혀 다른 물질이 되듯이 당시의 대자보 정국은 속으로 꽉 막혀 있는, 들끓고 있는 한국 사회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바꿔 말해 대자보 운동의 핵심은 첫 대자보나 제가 아니라 스스로 대자보를 통해 안녕치 못함을 말해야 할 만큼 안녕치 못한 현실, 그 자체였던 겁니다.
간혹 1년이 지난 지금, 결국 대자보 운동은 한철의 이벤트 그 이상 이하도 아니지 않느냐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리고 그 당시 함께 했던 안녕치 못한 사람들은 이 물음이 한시적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오히려 박제된 대자보만이 아니라 젖은 장작을 말려나가는 실천의 과정으로 전국의 안녕치 못한 사람들을 만나러 돌아다녔습니다.
결국 "말하는 건 허락받고 하는 게 아니다"란 아주 단순한 구호와 대리도 포기도 아닌 "자기정치를 실현하자"는 주장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하고 필요합니다. 기존의 언로(말의 통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즉각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큰 글씨로 뜻을 전한다는 대자보란 의미 그 자체는 현재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말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자보에 숨을 불어넣어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로 대자보를 쓰기 전부터 그리고 지금까지도 학교 밖의 공간에서 학습모임을 꾸리고 마르크스가 쓴 자본론이나 기타 고전을 강독하며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한 교육활동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대학을 안 다니는 청년도, 현재 생업을 하고 있는, 또는 한참 생업을 하다가 정년퇴임에 즈음하신 분들도 만나게 됩니다. 나이로 치자면 10대에서 50대까지의 사람들이 한 세미나에 있기도 합니다.
그렇게 세미나를 하다보면 이런 저런 고민을 듣습니다. 예를 들어 50대 직장인 분은 "아이가 조금 있으면 수능인데..."라며 나름 기성세대 혹은 부모세대의 고민을, 한편으로 수험생은 어떻게 진학 또는 삶을 설계해야 할런지를, 저와 비슷한 청년들은 어느 순간 이번 생이 망한 것 같은데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되냐는 등 각자의 안녕치 못한 고민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안녕치 못한 사람들과 함께 세미나를 하다보면 결국 이 사회의 무엇이 문제이고 그것을 왜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다들 알다시피 무엇이 문제인지가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았을 때, 고민은 계속 고민으로만 남게 됩니다. 오히려 무엇이 문제인지 스스로 명확하게 파악할 수만 있다면, 이 문제를 같이 해결할 사람을 만나고 함께 고민하면서 충분히 그 다음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 진정한 '안녕'을 찾기 위해선...이 글을 쓰며 올 한 해를 돌아보니 130여 일의 시간을 강독 세미나와 강연으로 보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서로 모여 현실을 고민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구속받지 않은 생각과 실천들을 이어나가야만 지금의 안녕치 못함을 안녕함으로 바꿀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과연 현실의 안녕치 못함이 우리들 스스로의 문제 때문인지, 아니면 이 사회의 구조적 문제 때문인지, 그리고 그걸 해결하는 것이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가능한 건지, 안녕치 못한 우리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즉 나와 이 사회의 안녕함을 찾기 위한 노력이란, 자신만이 살아남기 위한 각자도생이나 타인에게 기댄 대리주의 또는 파편화된 분노가 아닌, 이 사회, 자본주의 한국 사회를 고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하나 된 노력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때때로 그 과정이 지난하고 의미 없어 보일지 모릅니다. 심지어 혹자는 그런 과정을 두고 이런저런 말로 폄하하고 곡해하고 왜곡할 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동토를 뚫고 올라오는 새싹을 막을 수 없듯이 안녕치 못한 현실에 대해 터져 나오는 물음과 행동을 막을 순 없습니다. 작년 이맘때 한철의 유행이나 설교가 아닌 자기정치를 주장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