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서약서그 동안 담배를 끊기 위해 안 해 본일이 없다. 금연침, 금연초, 금연 패치, 전자담배까지. 하다못해, 아내의 생일 선물 대신 서약서를 작성해서 금연을 맹세했던 적도 있다.
이정혁
어릴 적 아버지의 숱한 담배 심부름을 하면서, 나중에 커서 절대로 담배 따위는 피우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머리가 굵어지고 난 후, 어른들 몰래 한 모금 빨았다가 그 역한 냄새와 매캐함에 눈물 콧물 다 쏟고는 정나미가 뚝 떨어진 줄 알았다. 하지만 대학 입학과 동시에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내밀었고,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 늘 그렇듯이 덥석 그 손을 잡고야 만다.
홍콩 느와르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인 우리에게 담배는 일종의 멋스러움이었다. 이틀쯤 감지 않은 긴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담배를 물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주윤발과 유덕화가 부럽지 않았다. 용돈이 늘 부족하던 시절, 성한 꽁초를 찾기 위해 자취방 재떨이를 헤집던 기억이며, 담배연기 자욱한 지하 막걸리 집에서 한 개피를 안주삼아 들이키던 탁주 한사발의 기억은 담배에게 면죄부를 주기에 충분할 만큼 아리고 저릿한 청춘의 자화상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끊어야 한다. 때가 되었다. 담배 값이 오른다는 발표가 나고 주위 흡연가들의 반응은 보통 세 가지로 나뉘었다. 전자담배로 갈아타거나 담배 사재기로 한동안 버티거나 끊거나. 그중에 마지막 부류인 금연을 결심한 사람들은 각자의 정당성과 근거를 내세우며 금연에 도전하겠지만, 내가 금연을 하는 이유는 살짝 다르다.
뭐 그렇다고 일반적인 금연의 이유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40대에 접어들면서 운동이라고는 2층에 있는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 것이 전부인 내 육신에 더 이상의 폐를 끼쳐서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거기에 말이 늘기 시작한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흡연의 문제점들을 배워 와서는 "아빠는 안 피지?"라고 캐묻는다. (난 아이들 앞에서는 담배를 태우지 않는다). 언제까지 비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기에 점점 담배 피울 장소가 없어진다는 점과 흡연자들을 범죄자처럼 인식하는 사회 분위기에 위축이 된다. 내가 일하는 곳도 건물 전체가 금연이라서 실외기가 있는 좁은 공간에 나가 쪼그리고 담배를 폈는데,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여름에는 그 공간의 열기가 찜찔방을 능가하고, 겨울에는 냉기로 인해 담배를 쥔 두 손가락이 얼어버릴 듯 하다는 것을.
이러한 이유들이 쌓이고 쌓여 언젠가는 담배를 끊어야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결정적인 카운터펀치가 한방 날아 왔다. 정부가 담뱃값 2천 원 인상이라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초강수를 둔 것이다. 슬프게도 개인의 의지는 국가적 외압에 쉽게 굴복하게 마련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담뱃값을 올려서 금연을 유도하겠다는 정부 당국의 발표는 전혀 믿음이 안 간다고. 국민 건강을 위해 담뱃값을 올릴 거면 금연 효과가 최대로 나타난다는 6천 원 이상이 적절하지 않냐고. 사실 2천 원 인상은 갈등의 범주에 속한다. 다른 데 쓸 용돈을 조금 아껴서 담배를 피우겠다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누군가는 또 이렇게 말한다. 부족한 세수 확보를 위해 애꿎은 담뱃값을 올린다는 건 경제생활을 좀 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꼼수라고. 2천 원 담뱃값 인상으로 흡연율이 29%까지 낮아질 거라는 예측은 숫자 놀음에 불과하며, 술과 담배만큼 꼬박꼬박 나라 곳간을 채워주는 충신 상품이 어디 있느냐고? 그럴꺼면 애초에 팔지를 말라고.
4대강에서 뺨 맞고, 편의점 와서 화풀이해도 유분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