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마른 똥 막대기라고?

[서평] <선문답의 세계와 깨달음(悟道)>

등록 2014.12.29 16:13수정 2014.12.29 16:13
0
원고료로 응원
동문서답도 이런 동문서답이 없습니다. 아니, 이건 동문서답 정도가 아닙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하고 묻는데 '간시궐(幹屎厥, 마른 똥 막대기)'이라거나 (삼(麻) 세근)이라고 답하니 황당할 뿐입니다.

조금 더 관심을 갖다보면 이 정도의 동문서답 정도가 아닙니다. '꽥'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아닌 밤중의 홍두깨처럼 후려 때리기도 하니 우문현답도 아니고, 말장난도 아니고 궁금하고 황당할 뿐입니다.


객승 : 부처란 무엇인가?
동산 : 삼 세 근.
갱상 : 부처란 무엇인가?
운문 : 마른 똥 막대기. -<선문답의 세계와 깨달음(悟道)> 239쪽-

고승들과 관련한 책들을 읽다보면 거반 빠지지 않고 맞닥뜨리게 되는 게 이런 내용의 선문답입니다. "달마가 서쪽으로부터 온 까닭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으니 밑도 끝도 없이 "뜰 앞의 잣나무"하는 식입니다.

무엇이 궁금해 묻는지는 알겠는데 그에 대한 답은 도대체 알 수 없는 게 선문답입니다. 궁금해집니다. 도대체 선문답이란 뭐며, 저런 엉뚱한 답을 통해서 알려 주고자 하는 것이 뭔지가 점점 궁금해집니다.

선문답이 뭔가를 설명해 주는 <선문답의 세계와 깨달음(悟道)>

 <선문답의 세계와 깨달음(悟道)> (지은이 자명 / 펴낸곳 민족사 / 2014년 12월 25일 / 값 2만 5000원)
<선문답의 세계와 깨달음(悟道)> (지은이 자명 / 펴낸곳 민족사 / 2014년 12월 25일 / 값 2만 5000원) 민족사
<선문답의 세계와 깨달음(悟道)>(지은이 자명, 펴낸곳 민족사)에서는 선문답이 무엇인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두루뭉술한 답이 아니라 학술적이고 체계적인 설명입니다.


선문답에 대한 정의, 선문답의 원리와 특징, 선문답에 드리워 있는 내용, 선문답이 이루어지는 형식, 선문답이 내포하고 있는 각성적 성격과 상담적 성격 등에 관한 설명 등이 학술적 논고를 통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체계적인 내용입니다.

경청 : 제가 총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으니 깨달아 들어가는 길을 가르쳐 주 시기 바랍니다.
현사 : 아래로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들리느냐?
경청 : 들립니다.
현사 : 그것이 너의 들어갈 곳이다.(그것을 쫓아서 그 안으로 들어가라?


이 문답에서 경청은 자신이 법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깨달아 들어가는 길을 가르쳐 달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사는 깨달아 들어가는 길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깨달음은 일체에 두루 하기 때문이다. 현사는 이때 잘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법은 들어갈 수 있거나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시냇물 소리를 말하면서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선문답의 세계와 깨달음(悟道)> 241-

책에서 선문답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는 내용 중 일부입니다. 아주 엉뚱해 보이기만 하던 선문답, 선문답을 통해서 현자가 경청에게 일깨워 주고자 하는 요체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 중 또 다른 예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질문 : 나는 무엇인가?
답변 : ㉮ 침묵 ㉯ 마른 똥 막대기 ㉰ 몽둥이 또는 큰 고함소리 ㉱ 똥 묻은 걸레
대답하는 방법은 많다. 손가락을 보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방법은 무한하다. 그러나 선사들은 단순히 대답하는 것보다 주로 듣는 사람을 각성시키는 방법을 택한다. 선문답은 상담적 설명이나 논리적 우회로보다 직설적으로 학인을 각성시킨다. 한 마디로 그 생각의 뿌리를 쳐 버린다거나 발판을 부셔 버린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것을 禪家에서는 말과 글을 끊어 버린다[言語道斷]고 말한다. -<선문답의 세계와 깨달음(悟道)> 181쪽

선문답, 쌍방향 소통이 이뤄질 때 가능

선문답에 대한 정의, 선문답의 원리와 특징, 선문답의 구조와 형식 등을 알고 있다고 해서 누구나 선문답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모스코드로 SOS는 '…---…'입니다. 위험에 처한 누군가가 모스코드를 잘 알고 있어 '돈돈돈 쓰-쓰-쓰- 돈돈돈' 쯤으로 인식 될 신호를 생산했을 지라도 그 신호를 수신하고 있는 누군가가 그 신호가 구출을 요하는 긴급 구호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긴급구호 자체가 시도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선문답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란 무엇인가?' 하고 물으니 누군가가 '마른 똥 막대기'하고 답을 했다면 그 답, '마른 똥 막대기'가 어떤 의미인지를 직시할 수 있을 정도는 돼야만 성사될 수 있는 것이 '선문답'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전제되는 것이 화두로 붙잡고 있던 의문입니다.  

의심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지만 의문을 가지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평소에 자신을 의심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의문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일 경우에만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크게 믿는 마음을 내었을 경우에 한해서 의문이 발생할 수 있다. 화두 참구의 세 가지 요소 가운데 대신심이 필요한 부분이다. -<선문답의 세계와 깨달음(悟道)> 90쪽-

선문답이 무엇인가를 알고 나면 동문서답처럼 들리던 '마른 똥 막대기'에서 현답이 들릴 것입니다. 선문답이 무엇인가를 알고 나면 한밤중의 홍두깨처럼 황당하기만 하던 '꽥'하는 고함소리, 느닷없이 후려치는 한 방에 담긴 답이 오도(悟道)의 이정표였다는 게 읽혀질 수도 있습니다.

출가수행자, 간화선을 지도하고 있는 사람들 꼭 읽어야 할 필독서

출가 수행자 중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간화선'이니 '화두'니 하며 선문답을 흉내 내고 있는 분들 또한 없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할 일도 많고, 닦아야 할 도(道)가 철산을 이루고 있는 게 출가 수행자의 삶일 수도 있습니다.

출가수행자로서 '간화선'을 지도하고 '화두'를 내주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먼저 선문답이 무엇인가 정도는 확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게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됩니다. 선문답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출가수행자 뿐만이 삶의 화두를 갖게 되는 모든 독자들에게 <선문답의 세계와 깨달음(悟道)>을 통해서 알게 되는 '선문답'은 선문답의 세계를 낱낱이 들여다 볼 수 있는 탐방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황당하게만 들렸던 선문답 세계를 알게 된다는 건, 간화선과 화두를 통해서 얻고자 하던 힐링이나 깨달음에 장애물처럼 놓여있던 비밀통로를 속 시원하게 열어주는 지식 코드를 획득하게 되는 또 다른 깨달음이 되리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선문답의 세계와 깨달음(悟道)> (지은이 자명 / 펴낸곳 민족사 / 2014년 12월 25일 / 값 2만 5000원)

선문답의 세계와 깨달음(悟道) - 화두, 모름(不會)에 대하여 분석하다

자명 스님 지음,
민족사, 2014


#선문답의 세계와 깨달음(悟道) #자명 #민족사 #간화선 #화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3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4. 4 '나체 시위' 여성들, '똥물' 부은 남자들 '나체 시위' 여성들, '똥물' 부은 남자들
  5. 5 요즘 MZ가 혼술로 위스키 즐기는 이유, 알았다 요즘 MZ가 혼술로 위스키 즐기는 이유, 알았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