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상의원> 포스터.
와우픽쳐스
지금은 관광지로 전락한 궁궐은 100년 전만 해도 실제적인 정치적 기능을 발휘하던 곳이었다. 그 이전 수천 년 동안에도 궁궐은 그런 곳이었다.
궁궐이 인간의 정치 생활에 영향을 끼친 기간이 수천 년이나 되고,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영향을 끼쳤는데도, 오늘날 우리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궁궐은 역사 속의 현실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우리 머릿속의 궁궐은 거세된 남성들과 그렇지 않은 여성들 속에서 임금님이 살았던 공간이다. 왕과 왕족 그리고 내시가 아닌 남성은 이 공간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
실제 역사를 반영하지 못하는 이런 오류가 우리 인식 속에 자리 잡게 된 데는, 백 년 전에 일본이 이 땅에서 시작한 역사교육의 영향도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일본식 역사 교육 하에서 한국인들은 궁궐의 실제 이미지를 배우기보다는, 궁에서 왕이 여인들과 함께 지내는 이미지만을 주입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 멸망 직전만 해도, 한양 사람들의 상당수는 궁궐에 출입하는 관료이거나 궁궐에 출퇴근하는 노동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한양 사람들 사이에서는 궁궐 내부에 대한 지식이 널리 퍼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선을 강점한 일본은 궁중 문화를 비롯한 생활사는 가르치지 않고 조선왕조의 무능을 부각시킬 만한 역사만 가르쳤다. 지배층이 당쟁에 빠져 세상의 변화를 몰랐다거나 임금이 궁녀와 내시들 틈 속에서 살았다는 이미지는 주로 이 시기에 형성된 것이다. 이 때문에, 궁궐 밖에서 궁궐에 출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느덧 민중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는 백제 의자왕의 전승 기록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그가 멸망 직전에 궁녀들과 술자리를 자주 가진 사실만 집중적으로 부각된 것과 유사하다. 이로 인해 우리 머릿속에서는 '궁궐' 하면 왕과 궁녀와 내시만 주로 떠오르고, 내시가 아닌 남자들은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궁궐이란 공간을 만드는 데 동원된 남자들 하지만 내시가 아닌 남자들도 궁궐 생활과 깊숙한 관련을 갖고 있었다. 궁궐 밖 남성들은 궁궐의 의식주(衣食住) 세 가지에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들이 없으면 궁궐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을 정도였다.
주(住)의 경우부터가 그랬다. 궁궐이란 공간을 만드는 데 동원된 인력은 궁궐 밖의 남자 백성들이었고, 궁궐이 완성된 후에 그곳을 지킨 이들도 백성 중에서 선발된 남자 군인들이었다.
의(衣)에도 내시 아닌 남성들이 깊이 개입했다는 점은 24일 개봉된 영화 <상의원>에도 반영되었다. 남자 기술자인 조돌석(한석규 연기)이 의복 생산을 주도하던 궁궐에 이공진(고수 연기)이란 무명의 남자 기술자가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경쟁과 갈등을 다룬 이 영화에서는 궁중 의복 생산의 주체인 남자의 위상이 분명하게 묘사되었다.
우리의 기존 상식으로는 궁녀들이 의복 생산을 전담했을 것 같지만, 실제로 그런 역할을 주도한 것은 영화 속 조돌석처럼 상의원(尙衣院)이란 관청에 속한 남성 기술자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상의원에서 교대로 근무하는 노비 출신의 남자 기술자들이었다.
물론 이들이 궁궐의 의복 생산을 독점적으로 담당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궁궐의 의복 수요가 너무나 많았다. 이들의 힘만으로는 '의'에 대한 궁의 수요를 충족하기 힘들 정도였다.
매일 새로운 버선을 신었던 왕과 왕비영화 <상의원> 속의 임금이 버선을 단 하루만 신다가 신하들에게 하사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의류 신제품에 대한 궁궐의 수요는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역사학자 김용숙이 구한말 궁녀들의 증언을 토대로 저술한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에 따르면, 왕과 왕비는 매일 새로운 버선을 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