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바꿈 :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 표지
오마이북
"'가만히 있어라'는 말 속엔 영원히 그늘이 질 거다. 특정 단어를 쓸 때마다 그 말 아래 깔리는 어둠을 의식하게 될 거다. 어떤 이는 노트에 세월이란 단어를 쓰려다 말고 시간이나 인생이란 낱말로 바꿀 것이다."소설가 김애란은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이란 글에서 세월호 참사가 남긴 상처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의 말처럼 세월호 참사 이후 '가만히 있어라', '세월' 같은 말의 의미는 변했다. 많은 사람은 이제 세월이란 단어를 들을 때 세월의 사전적 의미인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끔찍한 사건과 당시 배 안에서 죽어간 이들을 먼저 떠올린다.
후쿠시마도 어떤 사건 이후 뜻이 바뀐 단어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난 후, 후쿠시마라는 단어에는 그늘이 졌다. 후쿠시마라는 단어는 이제 단순히 일본의 한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 아니라 체르노빌과 더불어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가장 엄중한 경고를 의미하는 단어가 됐다. 이제 우리는 후쿠시마 사고 이전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탈바꿈(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은 이런 후쿠시마 이후의 세상을 사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탈바꿈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각계 전문가 21명과 인포그래픽 팀을 모아 "엄마와 아이가 함께 볼 수 있고, 핵과 방사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들의 입문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을 만들기로 했다. 그 결실이 바로 <탈바꿈>이다.
탈핵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탈핵을 주제로 한 책은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여러 권 나왔다. 하지만 <탈바꿈>은 그런 책들과 비교해서도 몇 가지 눈에 띄는 장점이 있다.
첫째, 애초 입문서로 계획된 만큼 초보자가 읽기 좋다. 원전에 관한 내용은 용어부터 전문적이라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탈핵 용어사전'을 부록으로 삽입해 전문 용어를 설명하고 있고, 본문도 비교적 쉽게 쓰여 있다. 특히 각 부가 끝날 때마다 동영상과 책, 언론기사들을 소개해 이후에 더 공부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눈에 띈다.
둘째,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탈바꿈>은 후쿠시마의 실상과 한국의 원전 실태를 비롯해 방사능 안전 급식 조례, 독일의 탈핵 사례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윤근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소장이 제기한 의료방사선 문제는 다른 책이나 언론기사에서 잘 다루지 않던 문제라 흥미로웠다.
질병의 진단 혹은 치료를 위한 검사 과정에서 노출되는 방사선을 의료방사선이라 하는데, 한국은 컴퓨터단층촬영(CT 촬영) 등을 남용하는 경향이 있어 이를 제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영국의 '국가 환자 방사선량 데이터베이스'를 사례로 들어 구체적인 정책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셋째, 단순히 원전이 나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이후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한 실용적인 정보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전선경 방사능안전급식 실현을 위한 서울연대회의 대표는 방사능에 오염된 식품으로부터 안전해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제시하고 있다.
전 대표는 방사능 정밀검사를 실시하는 생활협동조합의 식품을 이용하거나 마트에 방사능 검사 체계를 마련하도록 요청하고,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 등에 민원을 제기하며, 시민방사능감시센터 등에 식품 방사능 검사를 의뢰하자고 제안한다. 모두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실생활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특히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서는 무료로 방사능 검사를 해준다고 하니 서울시민에게는 유용한 정보일 듯하다.
핵폐기물 문제가 기술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