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중인 다산연구소 박석무 선생.
한정규
첫 번째 시기는 유년 시절부터 공부를 시작해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을 시작하기 전까지인 28세 때까지로, 경사(經史)를 두루 익히고 과거 공부에 온 힘을 기울여 기본적인 유학공부를 섭렵한 시기이다.
두 번째 시기는 28세부터 벼슬살이를 한 38세까지로 정조대왕의 재임기간 중이었다. 한림학사, 홍문관교리, 암행어사, 곡산도호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내며 정조의 치세를 도와 조선후기 문예 부흥기를 이룩한 시점이다. 한강에 배다리를 가설하고 수원화성을 설계하는 등 문신이면서 기술 관료로서 능력을 발휘한 때였다.
세 번째 시기는 40세부터 57세까지 강진 유배 기간으로 방대한 양의 책을 집필한 기간이다. 500여 권이 넘는 저술 대부분이 이 시기에 쓰여졌다. 네 번째 시기는 유배지에서 해배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과 삶을 마무리하고 75세를 일기로 고향집에서 운명할때까지로, 이 시기에 참고 자료나 서책의 부족으로 마무리 짓지 못한 저서들을 보완하고 수정했다.
다산은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심서' 등의 저서를 통해 조선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썩고 병든 나라를 고치고 바꾸기 위해 법과 제도를 고치고 바꾸지 않는 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신념으로 학문을 한 것이다. 형이상학적인 학문에서 벗어나 정치, 경제, 행정 등의 구체적인 나랏일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실력 배양의 학문인 실학이야말로 경세의 학문이며 조선을 살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다산의 가르침을 배워야한다조선후기에는 관료들의 부패가 극심해 다산 선생은 개혁하지 않으면 조선은 반드시 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시의 위정자들은 백성들의 삶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만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조선은 망하고 말았다. 권력을 가진 자가 부패하고, 돈을 가진 자가 부패하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는지 명백히 밝혀진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한다.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되면서 어린 두 아들을 훈육하는 내용이 '유배지에서 온 편지'에 절절히 나와 있다. 박석무 선생이 번역한 이 책을 보면, 다산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른에게 효도하는데 부모에게 하듯 하고, 형제지간에 우애롭게 지내고, 독서를 하고, 용기를 잃지말고, 베풀고 근면 검소하고, 불의에 분노할 줄 알아야함을 누차 강조한다. 유배지에 있는 아버지로서 아들을 교육시키는 과정이 눈물겹도록 치열하게 펼쳐진다.
박석무 선생은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전했다.
"다산은 개혁가였고 변화주의자였다. 현상을 그대로 두고 역사발전을 기대하는 일은 연목구어다. 공직자는 고치고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복지부동의 공직자는 나라를 망치는 주범이다. 목민(牧民)의 목의 의미부터 명확히 인식하고 공부에 임해야 한다. 승냥이나 호랑이의 피해로부터 어린 양들을 보호해주는 일이 목이라고 다산은 정의했다. 불쌍한 백성들을 보호하려면 토호들의 횡포부터 막아야 한다. 이런 것이 다산의 목민 정신이다. 목민 정신에 투철한 공직자가 많아지면 우리나라는 반드시 선진국에 진입할 것이다. 공직자는 우선 목민심서를 읽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책을 읽지 않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 우리는 책을 너무 안 읽는다. OECD 국가 중 거의 꼴찌다. 수원은 전국에서 도서관이 제일 많은 인문학의 도시인 만큼 책을 읽는데도 앞서가기를 희망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을 가슴에 안고 살면서 고전과 서예에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