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한살림 이행은 이사장다소곳한 자세로 한살림과 협동조합에 대해 재미있게 말씀해주셨다
이정혁
한살림에 대한 애정 어린 설명에서 느껴지는 자부심과 당당함은 그녀가 걸어온 삶 자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막힘없이 술술 풀어가는 한살림 이야기는 어느 한 아줌마의 인생역전기와도 같았다.
지극히 평범한 가정주부가 우연히 한살림의 소모임에 들어갔다가 조금씩 의식을 깨우치고 공부하여 성장하는 과정은 한편의 서사시였다. 다른 강연 내용은 접어두고 이번 회에서는 그 부분에 집중해 보기로 한다.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강원도 원주로 시집을 가서 시집살이와 더불어 전업주부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이 이사장. 본인의 활달한 성격 탓이겠지만, 주변에서 얼른 애 키워놓고 나가서 일하라는 무언의 압력이 심했다고 한다.
당시 부유한 형편의 형님 댁과 자주 비교되는 상황에서 자존심 강한 그녀가 선택한 길은 전혀 통념적이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봤자 우리 형님네가 저렇게 잘 사는데, 그렇다고 내가 기죽고 살 수는 없는 거라. 나는 다른 쪽으로 잘 살아볼 거야. 환경을 지키는 건 내가 더 잘하고, 아껴쓰고 절약하는 것도 내가 더 잘할 수 있어. 그러다가 한살림에서 나온 책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장일순 선생님의 말씀이 담긴 책은 지금도 가지고 다니면서 읽고 있습니다. 저한테는 성경과 같지요. 거기서 생명 존중의 사상을 배웠으니까요."한살림의 취지와 실천 덕목에 격하게 공감한 그녀는 생활 속 행동에 들어간다. 없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안 가진 건 홀가분한 거다. 그렇게 주변을 비워 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옷장을 비우고, 냉장고를 비우고, 마음까지 비워 나가는 과정. 그렇게 비워진 자리에는 친환경적인 순면제품의 옷과 농부의 피와 땀이 어린 유기농 먹거리들로 채워졌다.
"처음 한 살림을 만들게 된 배경은 농부를 살리자, 라는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농부를 살리면 땅이 살고, 땅이 살면, 생명이 살아난다는 원리였지요. 그래서 저희는 요즘도 농부님들을 하늘처럼 모십니다. 즐거운 농부, 행복한 농부가 생산하는 농산물을 먹으면 우리도 즐겁고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이 이사장의 아이들은 이제 고등학생, 중학생이 되었는데, 지금껏 학원 등의 사교육을 한 번도 시킨 적이 없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엄마의 한살림 운동에 함께 참여하면서 그 자체가 산교육이 되었고, 아이들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일 때, 엄마의 생일에 편지를 적었다고 한다.
'엄마, 이제는 우리가 뭐든 스스로 할 테니, 마음 놓고 한살림 운동 하세요'라는 딸의 편지를 받은 뒤부터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힘을 내서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을 해 나갈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녀가 이사장이라는 직함을 얻기까지를 조금 더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