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택 씨. 416기억저장소에서 기록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심혜진
오씨는 대학원에서 기록관리학을 전공하고 논문을 쓰던 중 이 일을 맡았다. 안산에 살고 있던 그에게 담당 교수가 제안했다. 5월부터 안산 지역을 돌아다니며 추모기록물의 위치를 파악했다. 6월엔 안산분향소에 천막을 치고 본격적으로 기록물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명칭이 '시민기록위원회'였어요. 천막을 설치하니 사고 관련 가족들이 이것저것 물품을 갖다 주시더라고요. 각지에서 위로편지나 종이학, 종이배들이 들어오면 우선 가족들이 받아본 후에 우리에게 넘겨요. 저희는 그걸 잘 보관하는 거죠."416기억저장소에서 중요하게 관리하는 기록물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우선 추모기록이다.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이 보내온 편지와 리본도 그 중 하나다. 길거리에 나붙은 메모지나 리본, 현수막을 훼손되기 전 수거해 보관하기도 한다. 두 번째로 희생자 개인의 기록물이다. 사고가 나던 순간 가지고 있던 유품이나 유류품, 사고 당일 친구들 사이에 오갔던 핸드폰 메시지 내용과 사진, 그리고 가족이 가지고 있는 희생자의 물품 등이 그 대상이다.
세 번째로 세월호 사건의 진상과 관련한 것도 포함된다. 진도 VTS 항적자료와 레이더 영상 데이터 등 진상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를 유가족 중심으로 모으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활동 기록이다. 진도에서부터 광화문, 국회 농성 등 진상규명을 위해 유가족들이 해온 활동,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활동도 중요한 기록 대상이다.
기록물을 모으는 일은 주로 기록수집팀에서 담당한다. 기록물이 있는 곳으로 직접 가서 수거해오는 방식이다. 컨테이너와 기억저장소 1·2호관은 이들이 수거해 온 기록물을 관리하고 보관하는 공간이다.
한참 메모지를 붙이다 보니 궁금증이 생겼다. 메모지에 적힌 내용이 비슷한 것이 많은데 굳이 다 보관할 필요가 있을까? 중요한 것만 보관하고, 나머지는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가 혹시 나중에 필요할 때 비슷한 내용으로 새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뜬금없는 질문인지 오씨가 난감해 했다. 그러자 옆에서 묵묵히 메모지를 붙이고 있던 김아무개씨가 대답을 했다. 그도 오씨와 마찬가지로 대학원에서 기록관리학을 전공하고 잠시 일을 돕는 중이라고 했다.
"내용만 복사해도 정보를 인식하고 활용할 수는 있죠. 하지만 실제 현장에 있던 원본이 가진 느낌까지 전달할 수는 없어요. 기록을 저장하고 관리한다는 건 망각에 대한 저항의 의미도 담겨 있어요. 유가족들은 누군가 자신들을 기억한다는 데에서 위로를 받을 수도 있고요. 또 기록저장소가 사고로 상처받은 이들이 모이는 지역공동체의 구심점이 될 수도 있죠. 기록이 가진 다양한 역할과 기능이 있어요."오씨는 그동안 모은 기록물이 컨테이너로 하나 가득하다고 했다. 종류도 크기도 다양하다. 그중에서 오씨의 마음을 건드린 것은, 바다에서 건져 올려 축축한 채로 전달된, 희생자 학생의 유품이었다.
"축축한 옷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 정신이 멍해지더라고요.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몸으로 생생히 느낀 순간이었요. 처음엔 유품 받고 울컥할 때가 많았죠. 지금은 많이 적응한 것 같아요.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그냥 냉정하게 생각하고 작업하려고 노력해요."원본이 가진 느낌이라는 게 어떤 건지 감이 오는 듯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컨테이너 문이 열렸다. 한남대학교 심성보 교수였다. 그는 416기록저장소 기록관리팀장을 맡았다. 일 주일에 두세 번은 이곳에 온다고 했다.
그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이렇게 기록을 모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역사를 만들기 위한 거죠. 기억해야 싸울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용지는 시민들이 자신의 이름을 적은 그냥 기록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를 호소한 유가족들의 목소리이자 이 자체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특별법 제정, 재발방지를 위한 커다란 외침이기도 하거든요. 활동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 수도 있고요. 이런 것들이 기록으로 남아야 역사가 되겠죠."그 많은 이불로 과연 무엇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