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쉐프 5기 12명의 요리사
슬로비생활
"나는 요리사의 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처음 들어올 때부터 진로, 꿈 등 이런 것에 생각이 없었다. 요리하는 것은 좋아했지만, 요리를 직업적으로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영셰프에 와서 요리를 구체적으로 배우다 보니 생각보다 어렵고, 해야 하는것도 많았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나서야 하는 일들을 피했다. 해야 할 일에도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영셰프 중에는 자격증을 가진 사람도 있었고, 요리에 대한 구체적인 삶을 꿈꾸고 있는 사람도 있어서 아무 생각없이 합류한 나는 자꾸 움츠러들었다. 그런데 배움의 시간이 쌓이다 보니, 경험이 있었거나 이전에 배워 본 동기들과 내가 별반 다르지 않고 동등한 입장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때 비로소 나답게 행동할 수 있었다. 왠지 마음도 편해지고 자신감을 얻어 활개치고 다녔다." -영셰프 5기, 김랑(17)"샐러리는 빳빳하고 질겨서 껍질을 벗겨 다져야 했다. 과정은 맛 없어 보여도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완성은 역시나 맛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껍질을 벗겼다. 엄청 빳빳하고 결이 보이는 게 신기했다. 중식 소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피망도 다졌다. 중식은 '원재료를 더 맛 좋게 하기 위해서 소스를 만드는 것인가?'하는 느낌도 들었다. 가지를 노르스름하게 튀기자 가지에서도 맛있는 냄새가 나는 것이 신세계였다." -영셰프 5기, 김막내(17)10년 후, 영셰프의 모습은? 영셰프스쿨의 배움 과정은 2년이다. 입학 후 1년은 음식을 배우는 것을 기본으로 요리를 몸에 익히는 과정을 배운다. 삶과 요리를 대하는 태도를 배우는 인문학 수업도 배운다. 하자센터 안의 '영셰프 밥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실습 과정이 끝나면, 오후에는 다양한 요리 세계에 대해 배우고, 여러 주제의 인문학을 공부한다. 뿐만 아니라 몸의 긴장을 풀어주고, 마음의 휴식을 갖는 명상을 배우며 음악과 연극도 했다.
2년차 과정은 인턴십으로, 학교 밖에서의 배움이다. 12명의 영셰프들은 '카페 슬로비'와 네트워크로 연결된 현장에서 실전 경험을 쌓게 된다. 영셰프학교장을 맡고 있는 한영미 대표(슬로비생활)는 1년을 수료하는 영셰프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을 전했다. 바로 "이제는 사고를 쳐도 괜찮다"는 것. 아래는 한영미 대표의 말이다.
"누구를 보든 인사를 잘하는 영셰프가 되라고 했다. 요리로 노동하는 일은 하늘이 내려준 천직이니 이렇게 성스러운 일을 섣불리 돈으로 환산하지 말라고도 가르쳤다. 5기 영셰프들이 보여준 지난 시간은 그 자체로 감동이고 보람이었으며 뜨거움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고민과 방황을 거듭할 날이 올 것이고, 때로는 절망으로 아파하는 인생의 굴곡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만만치 않은 세상을 상대할 준비를 위해서라도 지금 충분히 사고치고 힘껏 아파하길 바란다. 좋았던 시절을 감사함으로 기억하되, 그것에 갇혀 있지 않고, 밋밋한 인생보다는 더 거친 세상과 만나 더욱 단단해지는 영셰프들이 됐으면 한다."영셰프의 담임을 맡고 있는 보리 선생은 어떤 캐릭터를 품고 왔는지 궁금하기만 했던 학기 초 '모종'같은 모습에서 한뼘 쯤 자란듯한 모습이라고 했다. 더불어 영셰프들이 피울 꽃과 열매를 상상하는 즐거움이 생겼다고 했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10년쯤 뒤, 사람들과 소통하는 편안한 밥집이 대거 등장한다면 바로 우리 영셰프들의 밥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