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 출근 기다리는 성소수자 단체 회원들성소수자와 인권활동가들로 꾸려진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회원들이 8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출근을 기다리며 면담을 요구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유성호
무엇보다도 정치인의 태도라기엔, 해석의 여지가 많은 '말' 이외의 '행동'이 보이질 않습니다. 기독교 단체의 지도자는 논란이 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직접 만난 반면, 성소수자 단체는 시청에서 농성을 한 지 5일째가 되어서야 겨우 1시간 가량 면담할 수 있었죠.
게다가 '차별 없는 서울'을 위한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도 마땅히 없었습니다. 시민위원회와 성소수자 단체에 쏟아지는 보수·기독교 단체의 비난을 제지하려는 서울시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지금도 시청의 무지개(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농성단을 향한 혐오 발언은 당사자들이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이번 일로 인해 제가 살아 온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상황은 힘들고 모진 시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라는 시장님의 글도, 삶과 존재 자체를 부정 당하며 평생을 살아온 성소수자들에 대한 사과라기에는 민망하다 싶습니다.
시장님의 입장에서는, 이번 사과글로 종교 단체도 달래주었고 성소수자도 어느 정도 진정시켰다고 생각하시려나요? 하지만 여전히 비판의 목소리는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번 인권헌장 제정이 국내에 만연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바꿀 기회였음에도, 시장님이 이를 놓쳐 버린 셈이기 때문이지요.
시민위원회의 회의에 난입하여 고함과 욕설을 외친 혐오 세력을 서울시가 방관했기에 벌어진 일들입니다. 덕분에 보수 기독교 단체는 기세등등해졌고, 차별과 혐오의 논리가 하나의 주장처럼 왜곡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봅니다.
지난 선거에서 시장님에게 투표한 저는, 사과문을 접한 뒤에도 또다시 실망했습니다. '서울시민인권헌장'은 사회가 어떤 곳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 삶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지라도, 제가 살아가는 서울시가 진보하고 있음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기대는 시장님이 '엄혹하게 존재하는 현실의 갈등'이라 언급한, 혐오라는 감정의 파도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시장님의 사과가 진심이라면, 애매한 표현의 사과문보다 정치인으로서 할 수 있는 뚜렷한 행동을 직접 보여주시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높은 공약 이행률로 유명한 시장님이, 공약 중 하나를 혐오세력의 반대로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것을 만회하려면 더욱 그렇습니다. 시장님이 사과를 했음에도 무지개농성단이 시청 로비에서 농성을 계속하기로 한 것도, 저는 이런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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