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블록 위에 만들어진 논
오창균
"이것은 지훈이가 먹는 밥이 되는 쌀나무야, 신기하지?""정말 우렁이가 있네요. 여기서도 벼농사가 되는구나.""지금쯤, 논물을 빼줘야 잘 익어요. 고향에서 보고 처음이네."
주차장 한 켠에 승용차 한 대를 주차할 수 있는 크기의 논이 만들어졌다. 콘크리트 바닥의 논에서 벼가 자라는 풍경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에게 살아있는 동화를 들려주기도 하고, 잃어버린 추억을 되살리듯 벼이삭을 만져 보기도 한다.
한 평 논에서 생태계가 만들어지다지난 6월 초, 서울 영등포구 하자센터에 한 평 남짓한 논이 만들어졌다. 보도블록이 깔린 바닥에 물을 가둘 수 있는 방수천을 씌우고, 철도 침목으로 논둑을 만들어 흙을 채웠다. 4개 품종의 토종벼가 한 뼘 남짓한 깊이의 흙에서 잘 자랄 수 있을까 걱정됐다. 주변의 높은 건물에 가려서 벼가 햇볕을 쬐는 시간도 짧았다. 그렇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콘크리트에서 벼농사가 시작됐다.
뿌리가 자리를 내리느라 며칠 몸살을 앓은 후 벼모종은 점차 활기를 찾았다. 논바닥을 우렁이 한 마리가 유유히 걸어다녔다. 개구리밥이 생기면서 정말로 개구리가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기대도 했지만, 그런 깜짝 놀랄 만한 일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소금쟁이가 보였고, 잠자리 유충이 물속을 꼬물꼬물 기어다녔다.
번데기 과정을 거치지 않는 잠자리 유충은 때가 되자, 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벼를 비빌 언덕 삼아서 밀랍으로 만든 것 같은 허물을 남기고 잠자리가 되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