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바꿈: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탈바꿈: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탈바꿈프로젝트 지음 / 오마이북 펴냄 / 2014.11. / 1만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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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일본은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고 했지만, 방사능은 국경이 없었다. 이미 우리는 오염된 식탁을 마주하고, 태안 기름유출 사고 당시 30만 자원봉사자가 기름을 닦을 정도로 아낀 바다도 오염돼가는 중이었다.
결국 우리 자리도 재난의 한가운데 있었다. 음식 섭취를 통한 방사능의 영향은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축적되어 변화가 포착되기까지는 수 년에서 길게는 30년이 걸리기도 한단다. 그래서 모른 척하고 싶은 것일까? 하지만 그 상태가 언제까지 유효할까? 시한부 희망일 뿐이다.
한국의 핵발전소는 지진 발생지대 위에 세워져 있다. 또 신기하게도 대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대, 경주-영덕 일대에 핵발전소가 집중 건설되고 있다. 영덕은 신규 핵발전소 부지로 지정·고시됐고, 그 아래로 경주, 울산, 부산 해안을 따라가면서 총 16기의 원자로가 늘어서 있다.
1999년 이후 우리나라의 연평균 지진발생 횟수는, 이전 21년간의 지진발생 횟수의 배가 넘는다. 특히 2013년에는 또 그 수치의 배에 달하는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 발생은 확실히 증가하고 있다고 책은 말한다. 8일 새벽에도 전남 보성군에 규모 3.3의 지진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이 나라는 신규 원전 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 노후원전의 수명연장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이미 10년 수명연장을 한 고리1호기에 대해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은 최근 수명 재연장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언론은 재연장을 위한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고리1호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고가 난 원전이다. 또 월성1호기는 수명 만료를 앞두고 미리 7천억 원을 투자해 부품을 교체해놓고, 수명연장 심사를 받는다. 벌써 많은 비용을 투자했으니 연장하는 게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모든 기계에는 수명이 있다. 무한정 쓸 수 있는 기계란 없다. 후쿠시마 때 폭발한 원전은 모두 노후원전이었다. 데자뷰다. 우리 모두가 탄 배에 물이 차고 있다. 언제 가라앉아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 중 한 사람은 차라리 지금껏 사고가 안 난 게 천운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당국은 국민들을 향해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고 있다.
국민들에게는 핵발전소 신규건설이 필요치 않다 사고가 아니더라도 핵발전소는 우리 국민들의 주머니를 완벽히 털어간다. 핵발전소는 건설보다 이후가 더 문제다. 폐쇄나 폐로에 관한 기술이 없는 것이다. 10만 년 이상 격리되어야 하는 사용후핵연료에, 300년 동안 보관해야 하는 중저준위 핵폐기물까지 지금의 과학기술이 담보하지 못하는 지점이다.
14년 후인 2028년, 우리나라에서 가동 중인 23기의 핵발전소 중 12기가 수명이 만료된다. 핵발전소 폐로에는 1기당 1조 원에 가까운 비용과 수십 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폐로다. 그런데 그 비용은 누가 감당할까? 아마도 늘 그랬듯이 '호갱'이 되어버린 국민들이 다 감당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사고 없이 잘 치울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다. 경주에 중저준위 방사능폐기물을 저장할 예정인 방폐장이 12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놀랍게도 암반이 약하고 지하수가 많이 흐르는 곳을 부지로 선정했다. 지하수 유입으로 방사능이 새어나갈 가능성이 있지만 당국은 아무 대책이 없다. 독일에서는 겨우 30년 운영한 방폐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지반균열로 지하수가 스며들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핵폐기물을 방폐장으로 옮기는 과정 또한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영광, 울진, 부산, 울산, 대전에서 발생하는 핵폐기물이 이제 육로와 해로를 통해 경주로 옮겨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고라도 난다면 어떻게 될까? 이제 '고속도로를 달리는 핵폐기물'을 보게 되겠다. 내 차 앞을 달리는 핵폐기물 운반차량이라, 기분이 어떨 것인가?
세계는 이미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핵발전소의 가동과 건설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건설과 가동, 폐쇄까지 핵발전 에너지가 고비용이라는 게 증명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거꾸로 달리는 중이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는 '원전 르네상스'를 말했다. 왜 그랬을까?
우리나라의 핵발전소는 국민의 세금으로 대형 건설기업이 참여해 짓고, 또 저렴한 산업용 전기요금으로 혜택의 대부분을 대기업이 가져가는 것이다. 사실 국민들은 전기를 많이 쓰지 않았다. 놀랍게도 우리나라 1인당 주택용 전력소비량은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라고 했다. 핵발전소 신규건설은 재벌과 그 떡고물을 먹는 기득권의 필요이지, 국민의 필요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