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의 스타벅스 1호점 - 시애틀에는 골목마다 커피전문점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스타벅스 1호점이 가장 인기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유일하게 스타벅스가 탄생했을 당시의 로고를 그대로 쓰고 있으며 테이크아웃만 가능하다
김동주
이제는 설명이 필요없는 스타벅스가 시애틀에서부터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1호점에만 허락된 오리지널 로고도 뱃사람을 유혹한다는 인어, 세이렌이 아닌가. 사시사철 안개와 비에 덮인 도시와 묘하게 잘 어울리는 로고를 내세운 스타벅스는 무려 1971년에 처음 생겼단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이 향긋한 커피 향으로 지독한 날씨를 버텨왔을 것이다.
"무엇을 드릴까요?"레드와 내가 주문하려고 하자 턱수염이 제법 자란 백인 점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명쾌한 한국말로 물어왔다. 깜짝 놀라 눈만 깜박이니 점원은 으쓱하며 "여기는 한국인이 자주 온다"고 말했다. 계산을 마치고 나니 이번에는 아주 크고 우렁차게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던 점원. 좌석도 테이블도 없는 이 작은 카페를 멀리서 찾아온 여행자에 대한 보답이었다면 아주 후한 점수를 점수를 주고 싶다. 레드와 함께 또 다른 친구를 만난 듯, 아무도 없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의 핑크빛 네온사인 아래서 내내 흐뭇했으니 말이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구름이 파도처럼 몰려오던 그날 밤에 레드와 나는 도시의 전망을 내려다 볼 수 있다는 케리파크(Kerry Park)에 올랐다. 가득한 커피 향에 취했는지 잠이 오지 않기도 했지만 어쩐지 이 도시의 밤이 궁금했다.
다운타운을 지나쳐 조용한 민가의 뒷동산인 케리파크에 오르자 나는 마침내 이 도시의 진면목을 봤다. 겹겹이 쌓인 구름 아래로 불을 밝힌 시애틀은 내가 본 도시의 야경 중 최고일 만큼 아름다웠다.
▲시애틀의 야경 - 케리파크에서 바라 본 시애틀의 야경은 내 생애 최고의 야경 중 하나로 손꼽힌다.
김동주
우주비행장같은 모습의 스페이스니들(Space Needle) 은 말 그대로 하늘을 찌른다. 마치 UFO가 하늘 위에 정차해 있는 듯하다. 하얗게 빛나는 기둥의 불빛이 노랗고 빨갛게 바뀌면 외계의 비행선이 구름을 뚫고 어디론가 날아갈 것만 같다. 문득 어릴적 즐겨했던 부루마블의 '우주비행선'이 떠올랐다.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갈 수 있던 그 우주비행선을 타고 지금쯤 멕시코 어딘가에 있을 준을 데려오는 상상을 했다. 사람들이 빠져나가 텅 빈 도시를 셋이서 활보하다 모노레일을 타고 스페이스 니들에 올라 우리의 재회를 축하하고 싶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그렇게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홀아비 톰 행크스가 그랬듯이 말이다. 그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아직 한 번도 사랑에 빠져본 적 없는 학생이었다. 싱겁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키스는 커녕, 서로 만나지도 못하는 두 주인공에게 사랑이라는 굴레를 씌우는 것 자체가 말이다.
▲ 종일 비가 오던 날의 늦은 밤, 안개 가득 들어찬 하늘아래 불빛을 밝힌 시애틀의 밤 풍경은 좀처럼 잠들 수 없게 만든다.
김동주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알고 있다. 사랑이란 만나기 전의 두근거림과 만나는 순간의 흔들리는 눈동자라는 것을. 사람이 누군가를 알고 사랑하게 되는 것도 결국은 그 작은 흔들림에 의해서다. 그러고 보니 제법 많은 로맨스 영화를 히트시킨 노라 애프론 감독도 왜 속편을 만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사랑에는 속편이 있을 수 없다"고 했던 것 같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해밀턴 뷰포인트 파크(Hamilton Viewpoint Park)에서도 스페이스 니들 만큼은 또렷하게 보였다. 나는 벌써 그 기묘한 모양의 건물이 그리워진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영화 속에서 두 주인공이 만나는 곳은 스페이스니들이 아니라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 이었음을 떠올렸다. 결국 스페이스니들에는 오르지 않기로 했다.
그곳에서 누구를 만날 계획이 없기도 했거니와 더 이상 내 발걸음이 가볍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차가운 겨울바다를 알록달록 물들인 불빛을 보면서 나는, 여행의 끝을 생각하고 있었다.
간략여행정보 |
시애틀 도심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둘러보기에 무리가 없다. 메트로와 버스가 다운타운과 주요 명소를 모두 연결하며, 시애틀 시티패스(citypass.com)를 이용하면 스페이스 니들, EMP 박물관, 항공박물관 등 시애틀 대표 관광지 6곳을 45% 할인된 가격에 둘러볼 수 있다. 단 올림픽 국립공원과과 카미노 아일랜드 등 시애틀 근교 여행은 차를 렌트하는 것이 최선이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스타벅스 1호점은 오후 10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저녁에 미리 방문하는 것이 좋다. 단, 1호점은 테이크아웃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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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이 잠든 도시... 낮보다 밤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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