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국가경쟁력강화포럼 강연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새누리당 친박계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에 참석해 '우리 경제현황과 2015년도 예산쟁점' 주제로 강연하기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유성호
기획재정부의 말처럼 이런 '중규직' 제도라면, 새로 도입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미 법에서는 기간제임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고 기간제 노동자는 차별받지 않도록 제도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은 다르다. 기간제라는 이유로 정규직 임금의 50%도 못 받는 등 차별이 심각한 상황임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미 있는 제도를 놔두고 '차별받지 않는 기간제'라는 제도를 새롭게 만든다고 차별이 없어질까?
그런데 불안하다. '중규직' 제도가 과연 해프닝으로 끝나게 될까? 정부는 이미 고용형태를 매우 복잡하게 만들어왔다. 그러면서 말만 '차별이 없다'거나 혹은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한다'고 할 뿐, 실제로는 대단히 차별적이고 고용이 불안정한 여러 형태의 비정규직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여러 고용형태 사이에 위계를 두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를 바라기보다 무기계약직을 소망하는 등 조금이라도 나은 고용형태를 바라게 유도해왔다.
정부는 그간 (자동전환은 아니지만) 2년간 지속적으로 일한 경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등 선별적으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나 고용안정성을 조금씩 달리해 왔다. 노동자들은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위해 정부와 기업의 통제에 순응했다. 정부가 새로운 고용형태를 만든다는 것이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정부가 원하는 것은 고용형태를 다양하게 만들어서 기업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공급하거나 폐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임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중규직'의 대표적인 고용형태가 바로 '무기계약직'이다. 2006년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으로 만들어진 '무기계약직'은, 계약기간은 정하지 않지만 별도로 직군을 분리하여 차별을 유지하는 고용형태이다. 고용이 안정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업무의 폐지나 예산감축, 근무평가에 의해 언제라도 해고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또 '시간제 정규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시간선택제 공무원과 시간선택제 교사제도를 만들면서 '정규직 상용형 일자리'라고 선전해 왔다. 즉 단시간 일하는 노동자이지만 정규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분할할 수 없는 권리를 잘라내서 일한 시간만큼만 권리를 준다는 이 발상은 결국 시간선택제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한하고 차별을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요란한 선전과는 다르게 공공부문 시간선택제 일자리의 90% 이상은 기간제이다.
고용노동부 산하 고객상담센터(아래 고객센터) 사례를 보자(관련기사 :
"용역업체로 가는 게 고용안정? 고용노동부 너무해요"). 고객센터는 지난 2013년 1월 '국토균형발전계획'에 따라 경기도 안양에서 울산 혁신도시로 이전해 개소했다. 당시 안양 고객센터에서 일하던 전화상담원 가운데, 무기계약직과 기간제계약직 노동자 84명은 탄력근무제 도입으로 하루 2시간 30분 일했다(이 고객센터에는 고용형태별로 공무원, 정직원, 무기계약직 직원, 기간제 계약직 직원이 있었다).
고객센터는 2년간 지속적으로 근무한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왔는데, 이중 51명이 무기계약직이었고 33명의 기간제 계약직 가운데 3명은 그 해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자였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르면, 무기계약직은 정규직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이들 3명은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노동자 대부분이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40대 이상 여성이라 근무지 이전을 앞두고 같은 지역 내 다른 장소에서 근무를 지속할 수 있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요구는 수용되지 않았고 이들은 외주용역업체에 취업하도록 했다.
정부 말대로 무기계약직은 고용이 보장되는 '정규직' 노동자들이었지만 차별 속에서 일자리를 잃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된 것이다. 정부의 '중규직' 주장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고용안정과 차별없는 일자리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하나를 포기하고 하나를 보장하는 일자리는 없다.
누굴 위한 '다양한 정규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