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페이지 갤러리 초대전 전시장 작품 앞에서 선 안창홍 작가
김형순
그가 밀양에서 부산을 거쳐 서울로 그리고 양평으로 정착하기까지 과정을 험난했다. 중3때 이미 집을 나와 부모의 경제적 도움 없이 살아보려 했다가 부산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이마저 그만두려하는데 미술선생의 격려로 학교는 졸업했단다.
경제적 독립을 위해 12월에 팔 성탄카드를 1년간 꾸준히 만들어 연말에 내놓으면 대박이 나 큰돈을 벌었다. 또 부산에서 미술학원 냈고 미대합격률이 높아지자 소문이 나 학생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몰리자 돈도 좋지만 도무지 작업을 할 수 없자 이를 포기하고 서울로 상경 9개월 만에 전업 작가가 되려고 양평에 터를 잡는다.
미술대학공부를 거부한 그는 독학으로 그만의 화풍을 개척했고 한국에서 별로 안 알려졌지만 엉뚱하게 1989년 프랑스 칸 회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으면서 명성을 얻었고, 최근 2009년 '이인성미술상', 2013년 '이중섭미술상' 등도 수상했다.
한국미술계에 이단아로 불리기도 하는 정말 한국미술계 독립투사처럼 살았다고 하지만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40여년 한국미술계 중심에 선 작가로 자부한다.
시대의 아픔을 맨드라미에 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