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버스... 기사 아저씨가 자고 있다

[신선생의 좌충우돌 중국여행⑨] 구이린 가는 길, 고되다

등록 2014.12.02 16:02수정 2014.12.0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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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경기도 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어 지난 세월호 사건 이후에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 올 겨울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지난 여행을 마무리 할 필요가 있어 다시 시작합니다. 2013년 12월 31일부터 1월 28일까지 중국을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 기자 말

귀주성(貴州省) 여행이 끝났습니다. 이곳에서 16개 소수 민족의 다양한 삶을 체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개발은 다양한 삶을 획일화해 어디를 가든 비슷한 모습입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지요. 하지만 여행자는 다음 여행지를 기대하며 귀주성을 떠나 세계적 관광지인 구이린(桂林·계림)으로 이동합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주민 시지앙의 새벽 버스를 기다리는 주민 모습
버스를 기다리는 주민시지앙의 새벽 버스를 기다리는 주민 모습신한범

디지털 세상의 여행

구이린까지 이동 방법을 알 수 없어 혼선이 생겼습니다. 한국의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실시간으로 정보가 전송됐습니다. 귀주성의 산골 마을에도 와이파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어디에 있든 정보 검색이나 지인과 실시간 연락이 가능합니다. 스마트폰은 여행자의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노트, 가이드북, MP3, 지도 등 여행의 필수 항목들이 스마트폰 하나로 대체됐습니다. 디지털의 발달은 시·공간 거리를 초월해 실시간으로 세상과 접하게 합니다.

문명의 이기에 의해 여행이 편리해졌지만 왠지 모르게 씁쓸한 느낌입니다. 여행은 세상과 연결고리를 끊고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며,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고, 두고 온 세상을 그리워하는 것인데. 디지털은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게 합니다. 세상 변화에 편승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끊임없이 선택하고 판단해야 하는 아날로그 여행이 그립습니다.

험난한 이동


운전 기사 고속도로에서 졸며 운전하는 기사
운전 기사고속도로에서 졸며 운전하는 기사신한범

레이산(雷山·뇌산)과 총지앙(从江·총강)을 거쳐 구이린(계림)으로 갑니다. 600km에 달하는 거리를 버스로 이동합니다. 귀주성의 산골을 두루 거쳐 가는 길이기에 소수 민족의 삶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버스에 올랐습니다. 레이산에 도착하니 총지앙 가는 버스가 없습니다. 매일 두 대가 운행되는데 오전 버스는 이미 출발했고, 오후 버스는 다섯 시간을 기다려야합니다. 매표소 직원은 카이리(凱里, 개리)에서 총지앙 버스를 타기를 권합니다. 

포기는 빠를수록 좋겠지요. 온 길을 되돌아 카이리로 향합니다. 힘들게 수집한 정보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카이리에서 총지앙까지는 다섯 시간이 소요됩니다. 버스가 출발하자 기사는 VCR을 틀어줍니다. 승객들은 환호성과 탄성을 터트리며 영화에 몰입됐습니다. 영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저는 창밖을 바라보며 졸며, 깨며 시간을 보냅니다.


고속도록 텅빈 귀주성 고속도로 모습
고속도록텅빈 귀주성 고속도로 모습신한범

한참을 졸다 눈을 뜨니 버스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립니다. 버스가 갈지자(之)로 운행되고 있습니다. 운전석을 보니 기사가 졸고 있습니다. 기사는 연신 하품하며 잠을 쫓기 위해 기지개를 켜지만 눈은 반쯤 감겨있고, 고개는 위아래로 끄덕이고 있습니다. 뒷좌석에 앉은 일행이 큰 소리로 저에게 이야기합니다.

"신선생 지금 기사 자고 있지?"
"예! 자고 있네요." 

기사의 잠을 깨우기 위해 일부러 고함을 지른 것인데. 기사는 여전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속 80~90km 속도로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기사가 졸며 운전하는 모습에 오금이 저립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몇 년 후 귀주성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났다면 아마 이 버스 기사일 것이라며 악담을 해봅니다.

총지앙에 도착했지만 구이린 가는 버스는 이미 떠나버렸고, 중간 지점인 산지앙(三江)가는 버스가 있습니다. 산지앙에서 일박하면 내일 일정을 단축할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버스에 올랐습니다. 이날은 아침 7시부터 밤 8시까지 강행군이었습니다. 끼니도 챙기지 못하고 버스에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배낭 여행은 친구가 원수가 되고, 원수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패키지 여행과 달리 매일 선택해야합니다.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하면 여행 기간과 비례해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24시간 얼굴을 마주하기에 냉각기를 가지지 못합니다.

다행히 우리 일행은 여행 기간과 비례해 살가워집니다. 서로 다른 연륜과 인생을 살아왔기에 일행이 주고받는 대화는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야기는 숙소에서, 기차와 버스에서 그리고 식사와 술자리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행은 문화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 못지않게 사람과 사람의 정을 나누는 것이지요. 

자오싱 동족 마을 '자오싱'
자오싱동족 마을 '자오싱'신한범

소수 민족 마을 자오싱

계획이 바뀌었습니다. 귀주성 소수 민족인 동족이 모여사는 자오싱에 들른 뒤 구이린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제가 가진 가이드북에 "귀주성 남동쪽에 있는 중국 최대의 동족 마을로 윈난성과 쓰촨성의 소수민족 마을이 개발과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고유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현재, 자오싱은 보석과 같은 존재다"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자오싱까지는 편도 160km로 3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자오싱을 염두에 두었다면 어제 총지앙에서 숙박을 했어야 했는데. 여행과 인생의 공통점은 예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지만 매순간을 즐기는 것이 여행이겠지요.

자오싱 동족 마을 '자오싱' 모습
자오싱동족 마을 '자오싱' 모습신한범

자오싱에 도착하자 거대한 주차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직 완공 전이라 차량은 없었지만 주차장 규모로 보아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계곡으로 들어가면 개울가에서 아낙들이 삼삼오오 수다를 떨고 햇살 좋은 양지에는 동네 노인들이 잡담을 하는 산골마을이 있으리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입구부터가 개장을 앞둔 민속촌 모습입니다.

가이드북을 펼쳐 보았습니다. 이 책의 출판은 불과 1년 전입니다. 속았다는 생각보다 울화가 터집니다. 일행이 가진 10년 전에 출판한 '론리플래닛'을 찾아보니 내용이 일치합니다. 자료 확인도 없이 다른 나라 가이드북을 표절하다니.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가이드북을 출간한 출판사와 저자의 비양심에 말을 잃었습니다.  

다행히 마을은 개발이 진행 중이어서 시지앙과는 다른 동족 전통 마을 모습입니다. 거대하고 화려한 입구와 달리 마을은 전통을 보존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천을 따라 회랑이 설치돼 있으며 마을에는 사방으로 개방된 5개 고루가 솟아 있습니다. 11층으로 된 목조 고루는 마을의 행운과 융성을 기원하고, 휴식이나 사교, 손님 접대를 하는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고루 아래에 있는 풍우교를 따라 주민들이 하천을 왕래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머피의 법칙

교통사고 도로 정체를 유발시킨 트럭의 전복
교통사고도로 정체를 유발시킨 트럭의 전복신한범

산지앙으로 돌아오는데 차량 정체가 끝이 없습니다. 내려서 앞으로 가보니 석탄을 가득 실은 트럭이 전복되어 있습니다. 도로에는 석탄 더미가 가득합니다. 포크레인이 작업하고 있지만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편도 2차선인 도로는 우회 도로도 없어 하염없는 기다림이 계속됩니다. 머피의 법칙처럼 한 번 엇나가기 시작한 일정은 매일 반복되고 있습니다.

저녁을 주문했습니다. 요리의 종류를 알지 못해 다른 사람 먹는 음식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손짓하며 "一样(이양, 같은 것으로)"하며 네 가지의 요리를 주문했는데 종업원이 가져온 요리는 다섯 가지입니다.   

주인을 불러 주문이 잘못되었음을 이야기하고 한 가지 요리를 취소했습니다. 주인은 우리가 주문했다고 우깁니다. 주인장이 작성한 주문서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분명 네 가지 요리만 적혀있는데 주인은 언성을 높이며 떼를 쓰고 있습니다. 화를 내고 큰 소리로 이야기해보지만 씨도 먹히지 않습니다. 끝내 모두 지불하고 나서야 나올 수 있었습니다.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외국인이어서 당하는 불이익은 사람을 불쾌하게 합니다.  

또 하루가 흘렀습니다. 매일 매일은 좌충우돌과 실수의 반복이지만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여정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여행의 끝난 후의 되새김은 아름답겠지요. 세상은 틀에서 벗어날 때 아름다우니까요. 내일은 '계림의 산수는 천하 제일이다(桂林山水甲天下)' 라는 명성을 가진 구이린(계림)으로 갑니다. 
#귀주성 #산지앙 #자오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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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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