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농성 중인 차광호씨
차광호
차씨는 하루에 4~5시간 정도 매일 정해진 시간에 운동을 한다. 새벽 스트레칭과 제자리 뛰기 4천 번을 시작으로 점심 식사 전에는 절 운동을 고공농성 날짜만큼 하고 복근운동을 한다. 차 대표가 왕(王)자가 새겨진 자신의 복근을 살짝 공개한 적도 있었다.
저녁식사 전에는 줄넘기와 팔굽혀펴기를 하고 저녁식사 후에는 속보로 굴뚝 안을 왕복한다. 한 번 가는데 스물 여섯 발걸음으로, 이를 농성 날짜만큼 반복한다. 덕분에 살이 많이 빠졌다. 밑에 있을 때는 일 년 365일 중에 340일 정도 술을 먹어 몸무게가 80kg이 넘었는데, 지금은 재보지는 않았지만 70kg 정도 될 거 같단다.
"운동도 힘들어요. 견디려고 하는 거죠. 죽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에요."빽빽하게 채워진 그의 하루 일과를 들으며 감탄과 반성을 하는 내게 차광호씨가 씁쓸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내 자신이 미워져서 힘들었습니다"우리가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면 올라오지 않았을 겁니다. 한국합섬 투쟁 5년 동안 굴뚝농성 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자본을 타격하면 됐으니까요."12명은 많은 고민 끝에 올라왔다고 한다. 그는 요즘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한다고 했다. 내려가면 뭘 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지, 자신이 그동안 노동조합 활동을 관성적으로 한 것은 아닌가에 대한 성찰도 한다. 이 투쟁이 마무리가 안 되고 내려가면 뭘 하든 떳떳하거나 당당하지 못할 것 같기도 한다.
"6개월 동안 굴뚝에 혼자 계셔 보십시오. 그런 마음이 안 드나... 서러워서 눈물이 납니다. 노동자로 사는 거, 자본주의에서 돈 없고 힘 없고 빽 없이 사는 거. 내 자신이 미워져서 힘들었습니다."요즘은 죽음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밑에서 연대활동 하는 이들이 보내준 <틱낫한의 포옹>(틱낫한)이나 <홀가분>(정혜신) 같은 책을 보며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다.
제 청춘 다 바친 공장에서 일 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요"공장 돌리는 게 가장 중요한 건데요. 같이 일했던 조합원들... 그 동지들이 다시 공장에서 일할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잘 안 되네요."같이 일했던 동료들 이야기가 나오자 차씨가 울먹인다. 요즘 그는 노동자가 공장을 운영하는 자주관리기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하지만, 스타케미칼은 규모가 큰 폴리에스테르 원사 업체이고, 제품을 소비자가 아닌 기업에 넘긴다는 특성 때문에 밑에 있는 동료들에게 크게 공감을 받지는 못하고 있단다.
"군대 갔다 와서 영업사원을 하다가 1995년에 입사했어요. 그 이후로 20년 동안 한 번도 이 공장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한국합섬이 파산했을 때도 이 공장을 지켰습니다. 이 공장은 제 청춘을 다 바친 공장입니다. 앞으로도 이 공장에서 일 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요."지금 그에게 큰 위안을 주는 것 중에 하나는 페이스북이다. 굴뚝 위에서 180여일 넘게 살고 있는 차광호씨에게 페이스북은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 수단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세상의 흐름을 알고, 사람과 소통을 한다.
"굴뚝에 올라오기 전에는 힘들어도 힘들다고 표현하지 않았어요. 꼭 할 얘기만 했죠. (노동) 조합 활동하면서도 보수적인 성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 게 좋아요."이 날은 페이스북 친구 권용해씨가 선물로 보낸 발열양말과 핫팩, 워머 등이 올라왔다.
희망버스가 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것"8월에 1차 희망버스가 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없었을 겁니다. 지역도 그렇고 금속노조도 그렇고 해복투만 고립되어 힘들고 절망적이었습니다. 1차 희망버스를 통해 전국에 우리를 이해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힘을 얻는 계기가 되었습니다."그동안 페이스북이나 전화통화로만 만나던 이들을 45m의 간극은 있지만, 멀리서나마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고마움과 함께 이 문제가 마무리 되지 않아 많은 분들이 계속 마음을 쓰고 스타케미칼에 오는 버스에 오르게 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있다.
다른 투쟁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부모님과 아내에 대한 미안함도 크다. 그가 굴뚝에 있는 동안 암투병 중인 그의 장모가 수술을 2번이나 받았는데도 가 보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 앞에 닥친 부당함을 못 본 척 하고 비켜갈 수 없는 것도, '먹튀자본'을 막아내고 이 공장에서 일하며 민주노조를 지켜내고 싶은 것도 그의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