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에 출연한 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씨
TV조선
혼란스러운 나는, 한편으로 김현희씨의 이런 활동을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해본다. 그녀는 사형을 기다려야 할 처지였지만 사건의 '유일한 증인'이라는 이유로 특별사면을 받았다. 그녀로서는, 지금의 이런 활동이 증인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얻은 호주 비밀문서에 따르면, 당시 한국 정부는 적어도 1988년 1월 12일을 기준, 김현희씨에 대한 사면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시기적으로 이때는 공식 수사결과가 발표되지도 않았고(1988년 1월 15일), 더욱이 재판에 따른 사형선고가 내려지기 훨씬 전이었다(1990년 3월 27일). 그녀의 증인 역할이 처음부터 당시 군사정권의 정치적 계산과 깊이 연결됐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권으로서는 사건을 어떻게든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려 했을 것이다(이는 군사정권이어서가 아니라 정치권력의 본능 아닐까). 많은 이들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던 이 부분은 이른바 '무지개공작' 문건이 국정원 과거사위에 의해 공개되며 알려지기도 했다.
이 문건은 1987년 12월 2일에 작성된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비행기가 실종된 지 겨우 사흘 뒤였다. 정권의 사활이 달린 선거를 앞두고, 안기부(현재의 국정원)를 포함한 당국은 이 공작에 적지 않은 예산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 그 예산 중 일부라도 블랙박스와 잔해, 또는 시신을 수색하는 데 조금이라도 더 썼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김현희씨의 증인 활동은 넓게는 이런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최근 몇 년간 그녀가 방송에서 하는 말은 문제가 있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국가기관과 시민단체를 동원해 '김현희 가짜 만들기 공작'을 했다는 것인데, 그녀의 말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그 정부가 만든 과거사위가 자신을 가짜라고 발표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더욱이 재조사 요구와 시도는 가짜 만들기가 아니라 사건의 특성상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의혹들을 해명하려는 노력이었다. 이는 김현희씨 말대로 "북한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종북세력"의 활동이 아니라, 종북-반북을 넘어 최소한 시신이라도 보고 싶어했던 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응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노력은 김현희씨에 대한 조사 실패로 많은 한계를 낳았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