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오도시화 된 공간 속에 예오는 오염에 노출되어 있다.
전병호
현대문명 속에서도 전통을 자존심으로 여기며 지켜 가는 것은 참 멋지고 좋은 일이다. 목마른 나그네를 위한 배려와 자비심 그리고 생명존중의 정신까지 보여주는 미얀마의 예오 또한 훌륭하고 멋진 전통이다. 현지문화를 존중하고, 직접 체험하고, 몸으로 느끼는 것이 진정한 여행자의 길이다. 미얀마에 가는 여행자들에게도 이처럼 멋진 전통을 체험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그러나 솔직히 당당하게 권장할 수는 없다. '현지문화 온몸 체험주의'를 주장하는 나도 아직까지 예오 물맛을 알지 못한다. 예오는 예외였다. 마셔 볼 기회가 있었지만 나이 탓인지 몸 상태 때문이었는지 길거리 항아리 물을 벌컥벌컥 마실 수 있는 배짱이 생기지 않았다. 가이드의 만류도 있었고, 솔직히 뒷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남의 나라 문화에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는 것이 옳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예오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거의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오고 있는 예오의 위생 문제에 대해 한 번쯤 고려해봐야 한다. 지하수 오염은 물론 대기오염이 점점 심각해져 최신 정수기 물도 가려 마시는 시대에 도시화된 공간 속의 예오는 오염에 노출되어 있다.
목마른 나그네가 그 오염된 물을 마시면 당장 목마름은 해결될지 모르나 그 뒷감당은 온전히 나그네의 몫이다. 복통과 설사까지도 사랑할 수 있다면 말리지 않겠다. 사실 나도 예오 물맛이 무척 궁금하긴 하다. 바간 파고다 순례 길에서 1달러짜리 기념엽서를 사달라고 쫓아다니던 어린 소녀가 생각났다. 뙤약볕에 지쳤는지 길 옆 예오로 달려가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것을 보았다. 가이드 말이 늘 마시던 물이라 상관없다고 하지만 청결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아 꺼림직 했다.
그때 문득 예오에 이동식 간편 정수 장치를 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유능한 발명가가 있다면 간단한 필터를 부착하여 정수할 수 있는 장치를 발명해(이미 있다면 더 좋은 일이다) 기부하는 건 어떨까. 미얀마 정부에서 훈장이라도 수여할지 모른다. 우주평화를 위해 한 번 시도해 보시라. 머지않아 양곤 거리에서 휴대용 정수장치가 달린 예오 항아리가 등장하길 기대해 본다.
늦은 밤 거실에서 진도 안 나가는 글과 씨름하고 있는데 안방에서 마누라가 부른다.
"물~ 도~"토박이 인천 사람이면서, 부산에 3년쯤 산 뒤로 가끔 자기가 부산 사람인 줄 아는지 부산 억양을 쓴다. 올 겨울 안방에 '예오' 세트를 놔드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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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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