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단의 노란 리본25일 저녁 태안문예회관 대공연장 무대. 태안군교직원합창단 제2회 공연 모습. 단원들은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무대에 올랐다.
지요하
어쩌면 나는 정기연주회 자체보다도 합창단원들의 '가슴'을 보러 왔는지도 모른다. 노래하는 그들의 가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의 무늬'들을 확인하러 온 것일 수도 있다. 기대와 이상한 긴장감으로 내 가슴이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지난 월초였다. 아침에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를 출근 시켜 주기 위해 함께 아파트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다가 5층에서 사는 '보경 엄마'를 만났다. 40대 시절을 살고 있는 그녀는 중학교 행정실 직원이었다. 교직원합창단에 참여하고 있는데, 제2회 공연을 위해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연습을 한다고 했다. 미리 축하와 격려를 해주었다.
며칠 후 승강기 안에서 다시 만났는데, 그녀는 우리 부부의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을 보며 합창단원들이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무대에 오르고 싶어 한다는 말을 했다. 누군가가 그런 의견을 내자 거의 전원이 찬동을 했다는 얘기였다.
나는 반색을 했다. 즉시로 아파트 로비의 우리 집 우편함에 들어 있는 노란 리본을 여러 개 꺼내 그녀에게 주었다. 항시 우편함에 여러 개씩의 노란 리본을 보관해놓고 사는 내 '준비성'이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다음날 또 승강기 안에서 그녀를 만났는데, 내가 견본으로 준 노란 리본이 작은 편이어서 좀 더 크게 만들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자신이 노란 리본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나는 그 말을 귀담아 들었다.
그리고 나는 10일 오후 다시 서울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염원하는 천주교 130936인 선언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 행사 시작 전에 먼저 '노란 리본공작소'를 찾았다. 노란 리본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있는 봉사자들께 우리 고장 교직원합창단의 정기공연 얘기를 하고 노란 리본 50개를 부탁했다.
선언식 행사가 끝난 후 다시 공작소를 찾으니, 두 가지 노란 리본을 50개씩 100개를 담았다며 작은 가방을 내게 주었다. 가슴에 달도록 옷바늘이 꿰어져 있는 작은 리본들과 가방 같은 데에 달도록 다소 크게 만든 리본들이라고 했다. 다소 크게 만든 리본들에 꿰어져 있는 고리를 모두 빼고, 따로 옷바늘을 작은 비닐 주머니 안에 챙겨 넣었다는 말도 해주었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이나 했다.
그날 집에 내려온 나는 즉시 리본 가방을 5층 보경엄마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25일 교직원합창단 정기공연 일을 기다리며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특이한 긴장감을 겪기 시작했다. 과연 합창단이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무대에 오를 것인지, 혹 중간에 무슨 입김이 작용하여 그 계획이 철회되는 것은 아닌지, 나는 실로 난분분한 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