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파업은 식판과 함께'전국학교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처우개선을 촉구하며 총파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희훈
현실에서 임금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보통 우리는 임금이 흔히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 원리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노동이 상품이고, 시장이 노동의 가격을 결정하며, 생산성에 따라 임금 수준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세계적 석학들의 연구 결과는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2010년 프랑스 경제학자 제롬 고키와 미국의 경제학자 존 슈미트는 '선진국의 저임금 노동'에서 임금을 결정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나 제도'라고 했다. 즉 노조 조직률과 단체 협약 적용 수준, 법정 최저 임금의 존재와 수준, 직업 훈련 정도, 사회 임금 유무, 고용 보호법의 유무 같은 것들이 임금 수준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임금은 사실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의 정도, 교섭의 힘 그리고 사회 제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다.
같은 일을 해도 나라마다 임금 수준이 다른 이유도 거기에 있다. 노동 인구의 90%가 노조에 가입된 덴마크에서는 벽돌공이 의사와 비슷한 수입을 올린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덴마크에 벽돌공 할 사람이 적거나 벽돌공에 의사만큼의 자격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벽돌공에게도 그만큼의 수입을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고 그걸 실현할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간 우리 사회의 임금 총량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대기업과 재벌이 사상 최대의 수익을 낼 때도 그것이 서민과 노동자의 주머니로 흘러드는 일은 없었다. 왜 그러한가? 내 월급은 왜 매일 이 모양인가? 그것은 노사 관계에서의 힘의 균형이 깨지고 재벌과 대기업의 지배력이 커진 탓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를 고용한 이들과 싸워야지, 나보다 월급을 좀 더 받거나 더 받기 위해 투쟁하는 같은 임금 노동자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도마 위에서 내 손을 자르는 것과 다름없다. 댓글의 표현대로 비정규직인 것을 모르고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들어갔는가?
지금 이 사회에 그런 일자리만 허락되기 때문이다. 또 공무원이 되면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을 거란 것도 다 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비난은 자기 계발을 하지 못하는 이들은 입도 뻥긋하지 말란 것과 같다. 처우에 만족하라는 뜻이 된다. 그런 논리라면 만약 교사들이 임금 투쟁을 하면 '억울하면 너도 판사, 변호사, 의사 되지 그랬니'라는 말도 가능하다.
불합리한 사회 제도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돌리는 것은 사회 구성원을 파편화하고, 지독한 자기계발이라는 늪으로 빠뜨릴 뿐이다. 생각해보자. 만약 급식 조리원이 교사와 비슷한 대우를 받는 사회였다면 공무원이 되기 위해 수년의 희생을 감내할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20일, 21일 이틀간의 총파업으로 이들이 얻어낸 결과물은 급식비 8만 원 지급이었다. 그것도 일부 교육청(강원, 경기, 대전, 광주, 세종시)이지만. 어쨌든 노조가 조직되어 함께 싸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어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24일부터 무기한 밤샘농성에 돌입했다. 연대회의는 오는 12월 2일부터 지역별로 교육청과 함께 교섭을 진행할 계획이며, 교섭 결과에 따라 2차 파업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급식실 조리 노동자들의 싸움을 비난해선 안 되는 이유세상에 홀로인 것은 없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남으로써 저것이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학교 비정규직들의 파업과 투쟁은 우리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 급식 조리원들이 만족스럽고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우리 아이들이 맛있고 건강한 급식을 먹을 수 있다.
이것은 절대 법칙이다. 또한 그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져야 우리 동네 학원이며, 식당이며, 미용실이며, 자영업자들도 좀 더 나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학교 비정규직들의 임금상승은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 요인이 될 것이다.
급식실 조리원들 대부분이 40~50대 여성이다. 구호도 한 번 외쳐보지 않았던 이 아줌마들이 처음으로 집회에 나선 그날은 마치 소풍 가는 분위기 같았다. 찰밥에, 옥수수에 먹을 것을 싸와 함께 나누며 이들은 수줍게 '차별을 시정하라'고 외쳤다. 그 모습이 보기에 아름다웠다. 왜? 우리 모두를 위한 정당한 투쟁이기 때문이다.
이 아줌마들이 싸워야 나와 내 이웃이 더 잘 살게 된다. 이 아줌마들을 비난할 때 얼씨구나 좋아할 이들은 기득권층과 재벌뿐이다. 화살의 각도를 정확히 맞추자. 당신이 재벌이나 기득권층이 아니라면 저들이 수줍게 들어 올리는 주먹에 지지를 보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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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강사, 전 안성신문 기자, 전 이규민 국회의원 보좌관, 현)안성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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