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주차장 밤에는 간이 레스토랑대열은 주차장 자리에 월세 100만원을 내며 레스토랑을 꾸려갔다.
가게는 6개월째 성업 중, 주인은 갑자기 월세를 두 배로 올려주라고 했다.
대열은 정성을 바치던 일을 접었다.
김대열
"변수가 생겼어요. 주차된 차가 밤 9시 지나도 안 빠질 때가 있어요. 그래서 낮에 도시락 장사했어요. '청춘도시락'이라고, 압구정에 전단을 뿌리고 다녔어요. 치킨 마요, 카레 덮밥, 소고기 덮밥을 3900원에 팔았어요. 군대 선임이었던 김은영형도 우연히 찾아왔어요. '혼자 하는데 너무 힘들어'했더니 형도 장사하고 싶어 해서 같이 헤쳐나가자고 했죠." 장사 잘되니 월세 두 배로 올려달라던 주인, 마음이 정리됐다대열과 은영이 형은 스쿠터를 사서 도시락 전단을 뿌렸다. 바비큐 오븐을 사서 케밥까지 만들어 배달했다. 찾는 사람이 많았다. 주차장에서는 저녁 장사를 했다. 입소문을 타고 <GQ>나 <바자르> 같은 잡지사가 와서 촬영도 해갔다. "너무 재밌었어요" 대열은 신이 나서 달마다 소주나 맥주와도 잘 어울리는 이탈리안 음식 메뉴를 개발했다.
대열이 밑바닥에서 무턱대고 연 파스타 집은 6개월째 성업 중이었다. 2012년 2월, 건물주는 느닷없이 그를 찾아와서 "월세를 2백만 원으로 올려줘야겠다"고 했다. 장사는 계속 재투자를 해야 했다. 월세 내고, 대열을 믿고 온 은영이형 월급을 줘야 했다. 대열은 분명히 월세 백만 원으로 임대차 계약서를 썼다. 그 두 배를 낼 순 없었다. 마음이 딱 정리됐다.
"영재랑 은영이 형이랑 나랑 셋이 다 청춘이고, 나중에 호텔 하는 게 꿈이니까 '청춘호텔'이라는 이름 달고 한 장사였어요. 망한 거죠. 저는 나락으로 떨어졌고요. 잠원지구에서 한 달 장사하고 접고, 록 페스티벌에서 완전 망하고. 주차장에서 장사하니까 가게 꾸미느라 또 빚내고. 고시원비도 못 내니까 은영이형네 집에서 얹혀살게 됐어요." 그가 완전히 나가떨어진 건 아니었다. '돈 벌어서 작은 가게부터 하자'고 결심했다. 레스토랑으로는 가지 않았다. 한 달 월급 2백만 원으로는 돈을 모을 수가 없다. 이 일 저 일을 하다가 부동산 영업 시장으로 갔다. 출퇴근이 힘들어서 부동산 사무실에서 잤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고, 한숨 자고 밤 12시에 일어나 강남 전 지역에 전단을 붙였다.
가뭄에 콩 나듯 실적이 나왔다. 야전 침대서 쪼그려 자니 허리만 망가졌다. 그는 은영이형과 저녁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고등학생들 틈에 끼어서 맥도날드 배달 알바를 했다. 4시간 일하면 햄버거 하나를 줬다. 재미가 없는 편도 아니었다. 그는 또래인 가게 점장과 농담하면서 많이 웃었다. 내심 벌리는 돈이 없어 답답했다.
"빚 갚아줄 테니까 집으로 와라."작년 3월, 대열은 부모님 말을 듣고 군산으로 내려왔다. 그는 집에 누워서 "스물여덟 살인데 아무것도 된 게 없잖아요"하며 짜증을 삭혔다. 몸과 맘이 추슬러질 때까지 그러고 있었다. 영재랑 은영이형한테 미안했다. 대열이 다시 한 일은 지방과 서울을 다니며 화장품 판매를 하는 것. "젊은 친구가 열심히 하네" 하면서 사주는 사람이 늘어났다. 1년 넘게 일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청춘호텔해라"올해 5월, 대열의 어머니는 "네가 서울에서 했던 '청춘호텔' 해 봐"라고 했다. 대열은 무서웠다. 요리를 하는 것도, 발목을 묶는 장사라는 것도. 그런데도 마음이 갔다. 사람들이 "너는 석고보드도 못 붙이고, 가구도 못 짤 거다"라고 했지만 혼자서 가게 공사를 했다. 철거하고, 가구 짜고, 타일 붙이고, 철판 작업을 했다. 서울에서 파스타 트럭을 만들 때처럼.
돈이 없었던 그는 3개월 동안 '셀프 공사'를 하고 '청춘호텔'을 열었다. 테이블 세 개에 바 테이블 하나. 가게 절반을 차지하는 주방은 오픈, 요리하는 모습이 다 보인다. 그는 "인색하지 않게 장사하고 싶어요. 제가 요리하고 서빙도 해요. 손님들이 음식 질문을 하면, 정확하게 답변할 수 있죠"라고 말했다. 테이블 세 개가 꽉 차서 두세 번 회전하는 지금이 좋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