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호랑이를 친근하고 익살맞게 그려낸 우리의 민화.
가회민화박물관
민화라는 용어는 일제 식민지 시대인 1937년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민속적 회화'란 의미로 만든 이름으로 그 이전부터 속화(俗畵)란 이름으로 대중과 함께 했다. 민화의 근원은 선사시대 암각화(巖刻畵)로 고구려, 신라 때 그려진 사신도(四神圖)와 처용도(處容圖)를 거쳐 조선시대에 다양한 소재로 변화했다.
조선 후기(19세기 말~20세기 초) 주로 서민들 사이에 크게 유행한 민화는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그림으로 평가받는다. 서민들의 꿈과 희망, 애환을 솔직하게 화면에 표현한 데다 사대부 문인화와 달리 작가들의 자유분방한 상상력, 해학이 돋보인다. 어눌한 것 같으면서도 정감이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쳐 1960~1970년대 근대화 과정에서 민화는 철저하게 소외됐다. 화가의 이름이 새겨진 낙관도 없는 서툰 '환쟁이'들의 그림 등으로 폄훼되며 학계에서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국내의 민화 전시관 혹은 박물관 또한 이곳과 강원도 영월 두 곳 뿐이다.
아담한 뜰 옆 공방의 역할을 함께 하고 있는 박물관 한옥 전시실에는 옛사람들의 진솔하고 살가운 정취가 담겨 있는 희귀한 민화 작품과 주술적 신앙이 반영된 전시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
민화의 특징을 잘 드러낸, 채색이 인상적인 병풍 모양의 화조도(花鳥圖)가 방문객을 맞이했다. 화조도에 나오는 원앙은 부부간 금실과 귀한 자식을, 학은 장수와 입신출세를 상징한다. 모란꽃은 부귀영화를, 소나무는 장수를 상징하는 등 저마다 고유의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다양한 새들이 꽃과 어울려 종이 병풍 위에서 날아다니고 지저귄다.
영수화(靈獸畵)라 하여 동물들이 주로 등장하는 민화는 특히 눈길을 끈다. 중국에 용이 있다면 우리나라엔 역시 호랑이인가 보다. 한국인에게 호랑이는 예로부터 특별한 존재였다. 호랑이는 한편으로는 공포와 외경의 대상이요, 용맹함의 상징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은혜를 입으면 갚을 줄 알고, 인간의 어려움을 보살펴 주며, 삿된 것들을 쫓아 주는 민중의 벗이었다.
민화에 단골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호랑이의 친근하고 개성 있는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웃음 짓게 된다. 민화 속에서 호랑이는 토끼가 받쳐 주는 장죽(長竹)을 빨거나, 왕방울만한 눈을 하고 까치들과 노니는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까마귀 울음소리에 놀라 눈이 동그래진 호랑이부터, 처진 눈으로 그림 밖을 향해 웃음띤 표정을 짓는 호랑이까지 다양하기도 하다. 위엄이 있어 보이면서도 무섭지 않고 늠름한 자태, 이것이 우리 호랑이의 모습이다.
이같이 익살맞고 정겨운 모습의 호랑이는 아마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 민화에 흔히 등장하는 무섭고 잔혹한 이미지의 호랑이와는 달리 한반도 호랑이는 귀엽고 친근하다. 두려운 존재인 호랑이마저 친구로 바꾼 우리 조상들의 여유와 유머 감각이 민화에서 묻어나온다. 무서운 호랑이를 이렇게 살갑고 해학적으로 그린 민화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한다.
민화 속 '세눈박이'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