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바라나시 갠지스강.
송성영
빗물과 땀에 절어 열차 칸을 헤매고 다니다가 천신만고 끝에 자리를 잡고 앉은 곳에는 전부 외국인만 있다. 3명씩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좌석에는 러시안 가족과 독일인 그리고 내가 앉을 자리를 알려준 꽁지머리 일본 청년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독일인과 일본 청년은 유창한 영어로 둘이서 뭔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러시안 가족은 나처럼 초보영어 회화 수준이었기에 비슷한 처지라 쉽게 어울릴 수 있었다.
헌데 대화 상대들이 묘한 조합을 이루고 있었다. 독일과 일본 그리고 한국과 러시아, 과거 침략국가와 침략당한 국가의 사람들이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생각 끝에 외국인을 만나면 한 사람으로 바라보기 이전에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집약시켜 바라보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마치 인터넷에 입력된 정보가 전부로 여겨 내 머릿속에 입력된 편견의 지식들을 들이대고 있었다.
낡은 역사의 편견으로 본 다국적인들그 낡은 역사의 편견으로 독일인을 나치로, 일본 청년은 제국주의 쪽발이를 연상하게 되면 그들 또한 러시안을 빨갱이로, 한국인인 나를 미 제국주의의 속국인쯤으로 연상하게 될 것이었다. 말수가 적어 보이는 독일인은 내내 조용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열차표를 보여 달라며 친절하게 내 좌석 번호를 확인해준 일본 청년은 오랜 여행으로 다져진 맑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일본 청년과 독일인은 조용조용 얘기했지만 어머니와 함께 인도 여행길에 오른 남매, 러시안 가족은 모두가 유쾌 발랄했다. 닭 벼슬 모양으로 머리를 세운 러시안 청년, 유리게니는 뜻밖에도 불교 신자라고 한다. 가족들과 바라나시 주변에 자리한 스리나가르, 쿠시나가르, 부다가야, 룸비니 등의 불교 성지를 순례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나 또한 부처님을 늘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유리게니와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영어 대화의 한계를 느낀 나는 동생 스님이 챙겨 준 반야심경을 꺼내 그에게 보여줬다. 틱낫한 스님의 해석이 붙어 있는 반야심경 책 뒷면에는 영어 번역본이 있었다. 그는 반야심경을 몇 구절 읽고 나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아주 좋아했다.
반야심경 구절처럼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기 마련이었다. 혹독한 인도 열차 타기 끝에 기분 좋은 인연들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부처님 말씀이 새겨진 반야심경 덕분에 나 너 분별없이 우리는 한 시간도 채 안 돼 서로 음식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나눠 먹는 사이가 되었다.